일부 조합원들이 손에 손을 맞잡아 두 줄의 인간띠를 만들자 다른 조합원들이 하나 둘 뛰어나와 버스에 올라탄 것.
이 과정에서 비조합원인 은행 간부 한 명이 부하 직원을 발견하고 “김 대리! 돌아와”라고 외쳤다가 노조 간부들의 거센 제지를 받기도 했다. 12일째 본점에서 농성 중이던 2400여명은 이날 50여대의 버스에 나눠 타고 경기 여주군 한국노총 연수원으로 이동했다.
이날 농성 장소 변경은 노사 양측이 한발씩 양보한 결과다. 사측은 전날부터 노조가 요구한 공개 협상에 응했고 노조도 지난달 25일 기습적으로 본점 건물을 점거한 행위가 현행법 위반임을 인정하고 사측에 본점을 돌려준 것.
이 같은 양보에도 불구하고 노사협상은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사측은 노조가 받아들일 수 없는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노조가 주장하는 국부 유출 방지나 독립경영 보장, 상호(商號) 유지 등은 경영권에 관한 사항이므로 단체협상의 대상이 아니다. 상장 폐지 철회는 현행법에도 어긋난다.
게다가 글로벌 경제체제에서 비싼 돈을 주고 주식을 사들인 새 대주주에게 “우리끼리 살도록 내버려 두라”거나 “번 돈을 가져가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은 시장경제원칙을 무너뜨리는 주장이다.
노조 지도부는 공감을 얻기 어려운 요구를 거둬들이고 사측이 협상의 여지를 열어 놓은 고용보장과 근로조건 개선 등 실질적인 문제에 관심을 돌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사측도 원칙만 고수할 게 아니라 협상의 묘를 살릴 필요가 있다.
이날 본점 건물은 정상화됐지만 영업점에 직원이 없기는 마찬가지여서 고객 불편은 계속됐다.
금융감독원은 “앞으로 노사 갈등이 잦은 은행에 대해서는 경영평가를 할 때 낮은 점수를 주겠다”고 밝혔다. 한미은행 고객들도 이에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노조는 ‘고객이 떠나면 은행이 망하고, 글로벌 자본이 떠나면 나라가 망한다’는 현실을 직시해 주길 바란다.
신석호 경제부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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