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과의 차이도 있는데 후발국에 추월당하는 것 아닐까?
최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수도 프리토리아에서 개최된 ‘디자인 리더십 대회’에 기조연설을 하기 위해 참여했을 때 이런 느낌이 들었다.
회의 주최국인 남아공 정부 관계자들은 “한국이 40여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 산업 강국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디자인 교육과 진흥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물었다.
보츠와나 짐바브웨 탄자니아 등 회의에 참석한 주변 아프리카 국가들도 디자인에 대한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특히 남아공은 영국 미국 등 선진국에 유학한 디자이너들까지 포함한 인력들을 모아 남아공의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본격적으로 힘을 모을 계획이며 우리나라를 모델로 한 디자인 센터의 건립도 추진하고 있다.
‘후발국이 쫓아오고 있다’는 긴장감은 세계의 공장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중국의 상황을 보면 더욱 높아진다.
세계 500대 기업의 대부분이 중국에 진출했다. 이들 기업은 생산 시설은 물론 연구와 디자인 센터까지도 속속 중국에 세우고 있다. 외국 기업 등의 디자이너 수요 등에 맞춰 중국 전역에 약 200개의 디자인 전문학교가 세워져 있으며 매년 8000명 이상의 디자이너가 배출되고 있다. ‘메이드 인 차이나’가 아니라 ‘디자인 인 차이나’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도 시간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기업 경영에서 보면 디자인 경영은 이제 생존을 위한 필수 요소가 됐다. 아무리 제품 성능이 좋아도 디자인이 나쁘면 팔리지 않는다.
1960년대에 IBM을 세계적인 우수기업으로 성장시킨 토머스 잡슨 2세 회장은 “좋은 디자인은 좋은 사업이다”라고 말했다.
디자인이 획기적인 아이맥 컴퓨터 시리즈로 애플을 기사회생시킨 스티브 잡스 회장과 디자인 책임자인 조너선 아이브는 베스트셀러가 된 MP3플레이어로 다시 한번 디자인 경영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유럽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가전업체인 필립스의 생존 비결도 디자인 경영이다. 필립스의 디자인 경영은 홍보관 등 건물에서부터 제품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업 활동의 혁신 프로세스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
필립스 디자인팀은 고객이 제품을 구매하는 단계에서 실제 사용 단계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각 단계에서 필요한 디자인 수요가 무엇인지를 살피고 있다.
기술 수준의 평준화와 다양한 생활양식이 나타나 독창적인 디자인을 통한 차별화 요구가 커지고 있으며 그만큼 기업들의 ‘디자인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앞으로 디자인이 기술 못지않게 제품과 기업의 운명을 좌우하는 요소로 급부상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제품 개발 초기 단계에서는 제품의 기능을 중심으로 한 품질이 경쟁력의 가장 큰 요소이지만 제품이 성숙 단계에 이르면 디자인이 제품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소가 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정경원 KAIST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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