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실업과 한국의 현실
▽신영미=청년실업은 어떻게 정의되나요? 주변에서 취직이 안 된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청년실업 현황도 궁금합니다.
▽이종훈 교수=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경우 15∼24세 중 일자리가 없어 일을 못하는 경우를 청년실업으로 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남성의 군 의무복무 때문에 29세까지로 보기도 합니다. 한국의 청년실업 인구는 지난해 약 30만명이었는데 적극적 구직활동을 하지 않아 실업자 통계에는 잡히지 않지만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젊은이들까지 합치면 45만명에 육박합니다. 우리나라가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는 전체 실업률과 청년 실업률의 격차가 OECD 국가 평균치를 상회하고 있기 때문이죠. OECD 국가 평균은 청년 실업률이 전체 실업률의 1.9배인 데 비해 한국은 2.5배나 됩니다. 특히 지난해는 3.1% 플러스 성장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절대 취업자수가 줄어들어 정말 우울한 상황입니다.
▽손창일=전체 실업률보다 특히 청년실업이 더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뭔가요?
▽이 교수=요즘은 지식의 변화 속도가 예전에 비해 빠르죠. 학교 공부도 학습이지만 기업에서 일하는 것도 학습입니다. 일할 기회를 잡아야 새 지식을 쌓을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일할 기회를 4∼5년 놓치면 개인이 가진 지식이 사장될 수밖에 없겠죠. 기회가 오더라도 일을 하기 어렵게 됩니다. 국가적으로도 인적 자원의 손실이 큰 거죠.
▽성준경=그렇다면 왜 우리나라의 청년 실업률이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가요?
▽이 교수=청년실업의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어요. 경기침체로 노동 수요가 부족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구직자가 기업이 원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한국에서는 ‘내부자-외부자 문제’도 주요 원인으로 꼽힙니다. 기업 구조조정에서 ‘내부자’를 보호하려다 보니 ‘외부자’가 손해를 보는 경향이 크다는 거죠. 기존 근로자의 고용을 보호하려다 보니 청년들의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뜻입니다.
● 취업난, 어떻게 돌파해야 할까
▽성=청년실업이 늘어난 것은 젊은이들의 취업 눈높이가 막연히 높아진 데도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임금을 많이 받으면서 일하기 편한 직장을 선호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거든요.
▽손=대기업 선호도 그런 맥락일 수 있겠네요. 학교 취업정보실에서도 학생들이 중소기업은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이 교수=취업난을 돌파하려면 우선 젊은이들이 현실을 잘 알아야 해요. 요즘 기업은 젊은 사람을 뽑을 때도 경력직을 선호한답니다. 이전에는 기업에서 ‘직접 가르쳐서’ 일을 시켰지만 요즘은 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사들이는’ 쪽으로 개념이 바뀌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자신의 경력을 개발해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중소기업이라도 경력에 도움이 된다면 가서 일을 배우고 큰 기업으로 옮기라는 거죠. 또 어떤 직종에 인생의 승부를 걸 것인가를 평소에 생각해 둬야 합니다.
▽신=그런데 진로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는 입시공부에 바쁘고, 대학에 들어와서는 취업 준비에 매달리고. 진로를 생각할 틈이 없어요.
▽이 교수=미래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젊은이들만 탓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려면 우선 많은 경험을 해 봐야 하는데 고교 때까지는 그런 경험을 할 기회가 전혀 없는 것이 현실이죠.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몇 년간 라면만 먹으면서라도 해 보겠다’는 패기로 경력을 키워 나가는 젊은이가 적은 것도 사실입니다.
● 정부와 기업의 대책은
▽신=청년실업이 심각해지면서 적절한 정부 대책도 나와야 할 것 같은데요.
▽이 교수=가장 근본적인 대책은 경제성장입니다. 또 일자리가 많아지려면 현실적으로 한국기업의 국내 투자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외국기업이 한국에 직접 투자하거나 기술이전을 해서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합니다. 그런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죠. 하지만 요즘은 한국기업의 해외투자가 증가하는 데 비해 외국기업의 한국투자는 큰 폭으로 줄어들고 있는 상황입니다.
▽손=정부가 대학과 각급 학교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서 인재를 키우는 일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환경도 중요하지만 인재가 있어야 외국기업이 투자하지 않을까요. 대학에도 다양한 취업준비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고요.
▽이 교수=정부뿐 아니라 기업도 할 일이 많지요. 기업은 멀리 내다보고 신규 채용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합니다. 당장 인력을 채용하지 않으면 단기적 비용은 줄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궁극적으로 인재 수혈 없이 경쟁력을 키울 수 없다는 점을 기업이 알아야 합니다.
▽성=결국 정부나 기업, 취업 희망자들이 모두 장기적 안목을 갖고 대책을 세워야 청년실업 문제가 해결될 수 있겠군요.
정리=주성원기자 swon@donga.com
■EU 각국의 청년실업 해소대책
청년실업은 한국뿐 아니라 선진국에서도 고민거리로 대두된 문제. 이에 따라 영국 독일 등 각국 정부는 다양한 청년실업 대책을 시행해 오고 있다.
▽영국=1998년부터 청년실업 대책인 ‘뉴딜 정책’을 시행 중이다. 6개월 이상 실업상태인 18∼24세의 청년과 2년 이상 실업상태인 25세 이상의 실업자를 대상으로 최대 4개월간 정부가 구직 상담과 정보제공 등의 도움을 주는 ‘게이트웨이’ 프로그램을 실시해 고용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독일=1999년부터 ‘청년들의 훈련, 자격증 및 고용을 위한 즉각적인 행동프로그램(JUMP)’을 시행해 청년들이 다양한 자격증을 취득하도록 돕고 있다. 이에 따라 1997년 10.2%이던 청년실업률은 2001년 8.4%로 떨어졌다.
▽프랑스=직업훈련의 현대화에 초점을 맞춘 실업대책 ‘TRACE’를 운영하고 있다. 지방정부와 공공 서비스기관, 기업과 노조가 함께 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 결과 1999년과 2000년 2년 동안 30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됐다.
▽벨기에=30세 미만의 구직자 전부를 대상으로 정부가 6개월간 고용이나 훈련의 기회를 제공하는 ‘ROSETTA’ 프로그램을 시행 중이다. 사(私)기업은 3%, 공무원은 1.5%에 해당하는 일자리를 실업 청년에게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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