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대란’ 감사 면죄부만 줬다

  • 입력 2004년 7월 16일 18시 16분


감사원은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위원회, 금융감독원, 규제개혁위원회 등 4개 기관을 카드대란의 공범으로 지목했으나 관계 공무원에 대한 책임은 묻지 않아 면죄부를 주기 위한 감사였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정책 실패는 ‘고의나 중과실’ 행위로 보기 어려운데다 당시 책임자들이 이미 현직에서 물러났다는 게 감사원의 해명이다. 감사원은 대신 금감원 부원장 한 사람에게 인사자료 통보조치를 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400만명의 신용불량자 양산, 국내경기침체 장기화 등 카드정책 및 감독의 실패에 대한 책임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희생양’ 찾기에 그친 정책감사=감사원의 이번 발표는 카드대란의 주요 책임을 금감원에 돌렸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금감원은 LG카드가 각종 허위보고를 했는데도 이를 제대로 점검하지 못했다. LG카드는 2002년 유동성자산 규모 등을 실제보다 과장해 보고하고 2001년부터 2003년까지 많게는 1조506억원의 연체채권을 모두 정상채권으로 허위 보고했다.

또 금감원은 LG카드의 경영 실태를 실제보다 높게 평가했고 1997년 말 도입된 ‘복수카드 조회시스템’을 활용하지 않아 ‘카드 돌려 막기’ 후유증을 제때 파악하지 못했다.

감사원은 이를 근거로 금감원 부원장에 대한 인사 조치를 요구했다.

▽카드정책 주도한 경제 관료는 누구인가=카드대란은 1999년 5월 정부가 보완대책도 없이 현금서비스 한도를 폐지하면서 시작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당시 정책책임자는 강봉균(康奉均·현 열린우리당 의원) 전 재경부 장관, 이헌재(李憲宰·현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 전 금감위원장이었다.

정부는 이후 2000년부터 2001년까지 카드사의 과당경쟁을 방치하는 한편 길거리회원 모집을 허용했다. 진념(陳稔) 전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과 강철규(姜哲圭·현 공정거래위원장) 전 규제개혁위원장이 당시 책임자였다.

정부는 2002년 5월에서야 전윤철(田允喆·현 감사원장) 전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 주도로 현금대출 비중을 축소하고 길거리회원 모집을 금지하는 내용의 카드 규제 대책을 뒤늦게 내놓았다. 하지만 카드사들의 돈줄을 급격히 조인데 따른 부작용은 2003년 하반기부터 가시화돼 결국 LG카드 유동성 위기로까지 번졌다.

▽감독체계 개편 갈등=감사원은 “카드대란은 복잡한 금융감독체계와 감독기관간 기능 중첩, 금감원의 비효율적 운영 때문”이라고 밝혔다.

감사원은 특히 감독대상 기관수가 금감원 설립 당시인 1999년 1월 2일 3814개에서 2003년말 현재 3182개로 632개나 줄었는데도 금감원의 정원은 같은 기간 1263명에서 1545명으로 늘었다고 지적했다. 감독당국의 몸집은 비대해졌지만 문제가 터지면 기관간에 오히려 책임을 떠넘기는 행태를 보여 왔다는 것.

감사원은 또 “민간기구인 금감원이 국민의 권리, 의무와 직결되는 인허가, 제재조치, 강제조사 등 공권력을 법적 근거 없이 수행하고 있다”며 장기적으로 금감위와 금감원을 통합해 정부조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플랜을 내놓았다.

그러나 당장 금감원 노조가 반발하고 나선 데다 청와대에서도 감독체계의 큰 틀을 개편하는 데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이어서 감독체계 개편에는 적잖은 진통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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