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한국 경제를 먹여 살리는 효자산업이지만 1983년 이 사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비관론이 많았다. 당시 정부가 “대규모 투자가 잘못되면 국가경제 전체가 위기에 빠진다”며 반대한 것은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
1987년 세계적 과잉투자로 반도체 가격이 폭락했을 때는 삼성이 반도체 때문에 망한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그러나 이병철 회장은 업황의 호전을 전망하며 추가 생산라인의 건설을 지시했고 그의 예측은 적중해 대박을 터뜨렸다.
그룹의 명운을 걸고 과감하게 위험을 껴안는 의사결정은 그룹 총수로서 쌓아온 통찰력과 예지력, 직관력이 어우러진 종합예술이다. 이런 의사결정은 세계 유수 경영대학원에서 배우는 시뮬레이션(모의실험)이나 시나리오 분석 등 계량적 접근으로는 나올 수 없다. 오히려 배운 대로 했다면 투자 포기가 합리적 판단이었을 것이다.
오너 경영이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삼성자동차의 실패 사례가 대표적이다. 1995년 회사 설립에서부터 불과 4년 뒤 법정관리 신청과 르노의 인수에 이르기까지 삼성차의 좌절은 잘못된 오너 경영의 단면을 보여준다.
이처럼 오너 경영은 절대선(善)도 절대악(惡)도 아니다. 사회경제적 조건이나 상황에 따라 빛을 발할 수도,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런데도 지금 오너 경영이 세습 경영이란 말로 폄훼되고 개혁의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오너 경영이 투명 경영이나 일류 경영의 대립개념이 결코 아닌데도 말이다.
이분법적 사고가 성행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현 정부가 들어서서 소위 ‘코드’라는 유행어를 낳으면서 더욱 심각하다. 그러나 좌우 흑백논리적 이분법의 위험성이나 시대적 착오를 보여주는 사례 및 조사 결과는 적지 않다.
2000년 모 다국적 회사가 영국 시민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과거에는 어떤 가치에 보수적 또는 진보적 시각을 가진 사람은 다른 가치에 대해서도 같은 노선에서 바라보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어떤 가치에 대해서는 진보적 관점이 사회의 주류를 이루는가 하면 다른 가치에 대해서는 보수적 시각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
영국의 얘기가 우리 사회에 그대로 적용된다고 할 수 없지만 가치관의 퓨전(융복합)현상은 국내에서도 확산되고 있음을 도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세대간이나 정치 진영간의 갈등과 반목이 거세긴 하지만 그 밑바닥에는 거대한 통합의 물길이 말없이 흐른다.
우리 사회가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다양성이 공존하는 열린사회가 되는 날은 언제쯤일까.
이원재 경제부 차장 w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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