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인점에서 팔던 제품을 들고 아파트 단지를 찾거나 유동인구가 많은 지하도 점포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는 상인이 부쩍 늘었다.
대한상공회의소 임복순 유통물류팀장은 26일 “비공식 유통망이 활기를 띠는 건 경기 불황 탓에 공식 유통망 진입을 포기한 업체와 상인이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후 2시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극동아파트.
침구류를 파는 한옥윤씨는 아파트 입구에 3평 크기 평상을 펴고 이불, 베개, 커튼을 진열했다.
“지난해만 해도 구리와 안양 공장에서 만든 이불을 대형 유통망을 통해 팔았지만 매출이 급감하면서 아파트 직접 판매를 생각하게 됐어요.” 연초에 격주로 아파트를 찾던 한씨는 최근 아파트 방문 횟수를 주 1회로 늘렸다.
서재경씨는 인천에 번듯한 속옷 매장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는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아파트 장터를 돌아다닌다. 가끔 충남 천안까지 원정 가는 일도 있다.
서씨는 “매장 매출이 부진해 올해 봄부터 아내와 함께 아파트 출장 판매에 나섰다”고 말했다.
대표적 부촌(富村)인 서울 강남의 아파트단지에도 장사판이 벌어진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청실아파트엔 옷가지와 반찬거리를 파는 상인들이 꾸준히 드나든다. 한 주민은 “허가 없이 장사하는 일부 상인들 때문에 주차하기가 불편할 정도”라고 말했다.
상인들은 팀 단위로 움직인다.
우선 팀장이 아파트 부녀회와 접촉해 단지 내 장사 일정을 정한다. 이때 의류 과일 채소 생선 곡물 등 판매 품목도 결정된다. 팀장은 이어 자신이 관리하는 상인에게 연락해 장터를 구성한다.
23, 24일 경기 고양시 덕양구 화정동 옥빛마을 아파트 장터도 이런 식으로 열렸다. 상인 박모씨는 “벌이가 시원치 않지만 팀장이 부르면 쏜살같이 달려간다”고 말했다.
상인들은 목 좋은 지하도 점포가 빌 때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든다.
서울시 시설관리공단은 최근 충무로 1가와 을지로 2가에 있는 지하도 상가 점포를 임대 입찰에 부쳤다. 경쟁률은 각각 15 대 1과 7 대 1. 시설관리공단 전경화씨는 “입지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핵심 상권 내 지하도 상가는 인기가 높다”고 설명했다.
지하철 2호선 역을 돌며 화장품을 파는 천상희씨의 꿈은 지하도 점포를 빌리는 것. 그는 “유명 화장품인데 점포 없이 장사하니 싸구려 취급받기 일쑤”라며 볼멘소리를 냈다. 단속을 피해 좌판을 접었다 폈다 하는 ‘게릴라식 노점상’도 늘었다.
서울시는 6월 노점상 단속건수가 8037건으로 5월의 7567건보다 6.2% 늘었다고 밝혔다.
홍수용기자 leg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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