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 독특한 경영자 승계법…차기CEO 미리 찜 “혼란 없다”

  • 입력 2004년 7월 26일 18시 29분


《“극적인 상황이나 충격은 없습니다.” 세계적인 반도체 제조업체인 인텔은 독특한 최고경영자(CEO) 승계 방식으로 경영진 교체에 따른 혼란을 최소화하고 있다. 미국의 경제 전문 잡지인 ‘비즈니스 2.0’에 따르면 인텔은 CEO 교체에 따른 경영권 분쟁이나 공백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 차기 CEO를 미리 정하는 것이 창사 이후 관례가 됐다.》

효율적 경영을 위해 CEO를 수시로 영입하거나 퇴진시키는 미국 기업 환경에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예측 가능한 인텔 CEO=내년 5월 인텔 CEO로 취임할 예정인 최고운영책임자(COO) 폴 오텔리니(53)는 2002년 말 차기 CEO로 내정됐다.

오텔리니씨는 정보기술(IT) 기업인 인텔에서 처음으로 탄생하는 비(非)이공계 출신 CEO다. ‘후계자’에 필요한 기술 관련 지식을 보완하기 위해 현재 차세대 무선 네트워크에서부터 마이크로프로세서 설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술교육을 받고 있다.

이전 CEO들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현 인텔 CEO인 크레이그 배럿도 1990년대 중반 이사회에서 후계자로 낙점받은 뒤 1998년 CEO로 취임했다. 이 과정에서 배럿씨는 전임 CEO였던 앤디 그로브 현 회장과 함께 사실상 CEO 업무를 분담했다. 그로브 회장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인텔 공동 창업자인 로버트 로이스와 고든 무어에 이어 3대 CEO가 됐다.

▽CEO 선택이 인텔 이사회의 가장 큰 임무=인텔 이사회는 매년 1월 20여명의 임원 명단을 받은 뒤 여러 차례 회의를 거쳐 차기 CEO를 가려낸다. CEO 재목을 미리 가려내 갑작스러운 CEO 교체에 따른 공백을 줄이기 위해서다.

1989년부터 인텔 이사를 맡고 있는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데이비드 요피 교수는 “인텔 이사회는 10년째 CEO 교체를 논의하고 있다”며 “CEO 선택이 이사회의 가장 큰 임무”라고 말했다.

▽인텔식 CEO 교체의 명암=인텔에서 CEO와 후계자는 상호 보완 관계다. 두 사람의 담당 업무와 책임을 겹치게 하면 위기 상황에서 상대방을 더욱 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오텔리니 차기 CEO는 COO로서 인텔이 전 세계적으로 운영 중인 생산 시설에 대한 예산관리 업무를 맡게 되면서 배럿 현 CEO의 업무 부담을 줄였다. 어깨가 가벼워진 배럿씨는 회사 내부 업무 대신 미국 정계에서 연구개발(R&D) 정책 로비와 핵심 고객 방문 등 외부 업무에 초점을 맞춰 회사 전체적으로 이익을 보고 있다. 점진적인 CEO 교체를 통한 ‘시너지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다.

반면 인텔 방식이 현직 CEO의 힘을 약화시킨다는 지적도 있다. 어차피 물러날 CEO에 대한 권위가 사라져 오히려 경영권이 흔들릴 수도 있다는 시각이다.

차기 CEO 경쟁에서 탈락한 유능한 인재들을 포용하지 못하는 것도 단점으로 꼽히고 있다.

송진흡기자 jinh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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