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소주업체인 진로는 최근 매각 주간사 선정을 위한 우선협상 대상자로 미국계 증권사인 메릴린치 증권을 선정했다. 진로 인수합병(M&A)건은 2조원대로 추정되는 '빅딜'이다.
대한투자증권도 지난 11일 KT&G 주식(약 3600억원) 매각 주간사로 메릴린치를 선택했다. 삼성 LG투자 대우 등 국내 증권사들도 응모했지만 '실력 차이가' 현격히 드러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증권사 기업금융 담당 임원은 "어른과 아이들의 싸움"으로 비유했다.
외국계 증권사들이 한국의 M&A 중개시장을 독식(獨食)하고 있다. 막강한 자금력과 탄탄한 해외 투자자 네트워크로 무장한 외국 계 증권사의 파상 공세에 국내 증권사들은 무기력하게 무너지고 있다.
▽독식 어디까지= 올해 들어 진행된 예금보험공사의 하나은행 지분매각(1조700억원·주간사 UBS증권), 신한은행의 신한지주 지분매각(6300억원·모건스탠리), 대한투자증권의 KT&G 지분매각(3600억원· 메릴린치) 등 '3대 주식 빅딜'은 모두 외국계 증권사에 넘어갔다.
이 과정에서 외국계 증권사들은 모두 '총액 인수' 제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외 거래를 통해 지분을 대량 매매하는 과정에서 주가가 기준 가격 밑으로 떨어질 경우 주간사가 모두 떠안는 파격적인 조건이다.
한 외국계 증권사 고위임원은 "방대한 해외 투자자 네트워크를 통해 수요를 정확하게 예측해야 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지분을 인수할 수 있는 자본력이 갖춰져야 가능한 제안"이라고 말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M&A 중개 실적 상위 10개사 중 삼성증권(3위)을 제외한 9개사가 모두 외국계 증권사였다.
▽네트워크와 신뢰가 핵심= 홍성일(洪性一) 한국투자증권 사장은 지난해 12월 한투증권이 보유한 기업은행 주식 4853만주(10.6%)를 해외 매각한 일을 잊지 못하고 있다. 해외 투자자에게 인지도가 떨어지는 기업은행 주식을 정말 팔 수 있을지 스스로도 반신반의했기 때문.
그러나 결과는 대성공. 기업은행 주식을 산 200여개 해외 투자자 중 97% 가량이 매각 주간사인 ING증권이 밀착 관리하는 고객이었던 것.
윤경희(尹敬熙) 당시 ING증권 서울지점 대표(현 ABN암로 서울지점 총괄대표)는 "크리스마스 휴가 준비하고 있는 해외 투자자들을 붙잡고 '기업은행 매각 건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설득했다"며 "투자자 네트워크와 신뢰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토종 자본을 키워라= 국내 증권사들은 상장 등록절차를 중개하는 기업공개(IPO) 시장에서 박리다매(薄利多賣)의 치열한 '혈투'를 벌이고 있다. 수익성이 떨어져 외국계 증권사들은 거들 떠 보지 않은 시장이다.
굿모닝신한증권 정재호 상무는 "국내 증권사들이 M&A 중개에 나서더라도 2000억원 안팎의 소형 '주식 빅딜'에 참가하는 게 고작"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유력 원매자가 국내 투자자인 경우에도 국내 증권사보다 외국계 증권사를 매각 주간사로 선호하는 게 현실이라고 소개했다. 최근 진로의 경우가 그렇다.
삼성 대우 굿모닝신한증권 국내 증권사들도 외국사와 공동 매각주간사로 나서는 등 M&A 사업에 힘을 쏟고 있다. 최근에는 우리은행 등 은행권까지 가세했다.
한국증권연구원 조성훈 연구위원은 "국내 증권사이 평균 자기자본 규모는 미국 대형 증권사의 5% 수준"이라며 "M&A 중개시장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증자나 증권사간 인수합병 등을 통해 덩치를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용기자 parky@donga.com
이강운기자 kwoon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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