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설계사 ‘잠 못 이루는 밤’… 보험업계 자구노력 치열

  • 입력 2004년 8월 1일 19시 02분


삼성생명의 ‘초보 설계사’ 이모씨(35·여)는 요즘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고 있다. 9월로 예정된 변액보험 판매 자격시험을 앞두고 ‘시험에 떨어지면 내쫓겠다’는 회사의 엄포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씨는 “매일같이 이어지는 강도 높은 교육에 함께 설계사가 됐던 동료 12명 중 절반가량이 포기했다”며 “노트북 컴퓨터와 각종 금융, 부동산, 세무지식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했다.

보험업계가 설계사 전문화를 통한 체질 개선에 사활을 걸고 있다. 지난해 5월 보험업법 전면 개정으로 내년 4월부터 은행이 보장성보험과 자동차보험까지 판매하게 되기 때문이다.

보험사로서는 자칫 판매망을 은행에 통째로 넘기고 상품 개발과 관리만 담당하는 ‘운용사’로 전락할 위기에 놓여 있다.

▽벼랑 끝에 선 보험업계=손해보험업계는 내년 4월 은행이 자동차보험을 판매하기 시작하면 시장의 35%를 잠식당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올해 3월 말 현재 손보 시장의 38.1%(7조9471억원)가 자동차보험인 점을 감안하면 손보사의 수익성 악화는 ‘불 보듯 뻔하다’는 전망도 많다. 3월 말 현재 10만9500명에 이르는 설계사와 대리점 인원 중 최대 30%까지 인력 감축이 불가피하다는 계산도 나오고 있다.

생명보험업계의 위기감도 못지않다. 국민은행의 자회사인 KB생명은 국민은행의 탄탄한 영업망을 기반으로 영업 시작 한 달 만에 월납 보험료 시장에서 기존 생보사를 제치고 업계 1위로 뛰어올랐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은행이 보험시장을 잠식하면 중소 보험사의 구조조정으로 이어져 서민층인 설계사와 대리점 조직이 와해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아줌마 부대는 옛말=보험사들은 은행에 맞서 상품 차별화를 서두르는 한편 이를 판매할 수 있는 ‘영업 인력 정예화’에 승부를 걸고 있다.

통합보험인 ‘슈퍼보험’ 판매 7개월 만인 지난달 29일 보험료 100억원을 돌파한 삼성화재는 최근 전체 영업인력 3만명 중 19%인 5600명에게 전문 판매 교육을 시켰다. 고객 민원이 발생하면 아예 자격까지 정지시키는 ‘고강도 처방’까지 내놨다.

대한생명은 설계사를 국내 대학원에 위탁 교육시키고 각종 자격 취득을 독려하고 있다. 설계사 선발 방법도 깐깐해졌다. 삼성생명은 2002년 하반기부터 설계사 모집 개념을 ‘증원’에서 ‘선발’로 바꿨다. 선발 단계도 기존 2단계에서 5단계로 강화했다. 이 결과 2002년 6월 3만8210명에 이르던 설계사는 올해 6월 3만2000명으로 6210명이 줄었다.

▽큰 손 고객을 모셔라=은행의 ‘프라이빗뱅킹(PB)’처럼 ‘큰 손’ 고객에게 전문적인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보험 컨설팅 조직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삼성생명은 ‘삼성 어드바이저스’라는 전문 컨설팅 조직을 운영 중이다. 고액 자산가에게 보험은 물론 부동산 투자, 세무 등 종합 재무 컨설팅과 자녀교육, 여행, 의료 등 생활자문 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다.

교보생명도 작년 말 ‘웰스 매니저’로 구성된 재무 설계센터를 출범시켰다. 대한생명도 내년 초 유사한 조직을 꾸릴 예정이다.

금호생명 상품계리팀 나효철 과장은 “은행에 비교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전문 재정설계사의 철저한 리스크 관리 및 애프터서비스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

박 용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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