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당산전철역 앞에서 10여평짜리 한식당을 운영해 온 H씨(39)는 최근 가게 문을 닫고 다른 식당에 취직했다. 작년만 해도 점심때면 60명 정도 되던 손님이 올해 들어 5, 6명으로 줄어들자 월세 230만원을 감당할 수 없어 영업을 포기한 것.
경기 의정부시 신곡동 금호지구에서 지난해 11월 치킨 프랜차이즈 가게를 연 오주홍씨(39)는 종업원을 두지 않고 가족들이 운영하고 있는데도 최근 들어 매달 200만원가량 적자를 내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경기 불황과 내수 부진이 장기화되면서 적은 자본으로 가게를 마련해 생계를 이어가던 자영업자들이 무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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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이라도 먹는장사는…’ 하는 말이 무색하게 음식점 임대료도 못 내는 곳이 늘고 있고 숙박업, 슈퍼마켓, 옷가게, 소규모 무역상 등도 타격을 입고 있다.
‘자영업 한파’는 남대문시장에 가면 금세 느낄 수 있다. 10일 오후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 내 수입제품 상가인 ‘자유시장’ 지하 1층. 구경하는 손님조차 없어 한산한 이곳은 여러 개의 점포가 아예 문을 닫았다.
상가를 관리하는 ‘자유공사’ 관계자는 “지난해 말에는 전체 287개 매장 중 30개가 비어 있었는데 지금은 50여개로 늘어났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일부 점포는 월세를 받지 않고 보증금만 받겠다는데도 몇 달씩 가게가 나가지 않는 곳이 많다”고 덧붙였다.
이러다 보니 은행 빚을 갚지 못하는 자영업자들이 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5월 말 현재 자영업자들이 은행에서 빌린 후 제때 갚지 않은 원금과 이자 총액(연체 잔액)이 2조9600억원. 이는 지난해 12월 말 1조8000억원보다 무려 1조1600억원이나 늘어난 것이다. 자영업자들의 연체율(은행에서 빌린 대출 총액 대비 연체 잔액 비율) 역시 지난해 말 2.1%에서 올해 5월 말 3.3%로 높아졌다. 전국에서 경매 처리되는 식당 등 근린생활시설도 최근 매달 5000여건에 이른다.
7월 말까지 신용회복위원회에 ‘채무 조정’을 신청한 사람은 2002년 10월 위원회 출범 이후 모두 21만8000여명. 이 가운데 16.5%인 3만5000여명이 ‘사업 부진’으로 신용불량자가 된 자영업자라고 위원회측은 설명했다.
한국노동연구원 노동보험연구센터 금재호 소장은 “자영업은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은 직장인 중 상당수를 흡수하는 ‘고용 안전판’ 기능을 해 왔다”며 “자영업의 추락은 고용 불안을 가중시키므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구자룡기자 bonhong@donga.com
하임숙기자 artemes@donga.com
정재윤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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