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호(號) 선장’ 최 회장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최 회장이 6일 충남 천안시 목천읍에서 진행된 ‘사랑의 집짓기(해비타트) 2004’ 운동에 참여한다는 소식을 듣고 천안에 내려가 그를 만났다.
천안시 목천면의 해비타트 공사 현장. 수건을 둘러쓰고 목장갑을 낀 손에 전기드릴을 든 최 회장은 유난히 땀을 많이 흘렸다. 폭염 속 그의 셔츠는 밑단 끝까지 전부 젖어 있었다.
“별로 힘들지 않아요. 미국에서 공부할 때는 집안 수리를 내 손으로 다 했어요. 이렇게 못을 박을 때 벽에 자국이 나면 안 되는데….”
올해 해비타트 운동은 SK그룹이 2억4000만원의 후원 기금을 지원하는 행사. 최 회장은 SK그룹 계열사 임직원들과 함께 자원봉사자로 참가, 벽 단열재를 붙이고 입주 예정자들에게 열쇠를 전달하는 일정을 진행했다.
최 회장이 직접 현장에 나와 팔을 걷어붙인 것은 ‘현장 경영’에 부쩍 관심을 쏟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재계에서는 그가 경영 일선에 본격적으로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는 관측이 많이 나오고 있다.
“기업으로서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이라면 어디든 달려가서 무엇이든 할 겁니다.”
SK가 요즘 강조하는 ‘행복 극대화 경영’에 대해 물어봤다.
“기업이 돈만 버는 것 외에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나서보자는 취지입니다.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꾸준히 해나갈 생각입니다.”
그는 “SK가 순발력은 없어도 하고자 하는 일을 끈기 있게 해나가는 건 잘한다”며 “선친(고 최종현 회장)의 경영 스타일도 그랬다”는 말을 덧붙였다.
최 회장은 ‘정책의 일관성’에 대한 아쉬움도 나타냈다.
“에너지와 환경 분야의 기술에 꾸준히 개발 투자해도 정부의 정책에 일관성이 없어 곤란을 겪는 경우가 있습니다.”
앞으로의 경영 계획과 관련해서는 “기존의 ‘SK 매니지먼트 시스템’을 현재 상황에 맞춰 업그레이드 시키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며 “크게 달라진 중장기 경영 전략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SK의 ‘변신’은 작년 한때 ‘해체 위기’에까지 몰렸던 회사를 추스르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내년 주주총회에서 재연될 것으로 예상되는 소버린과의 표 대결에도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최 회장은 난관에 부닥친 추가 지분 확보 시도에 대해서는 “지금은 뭐라 말하기 어렵다”며 언급을 피했다. SK는 최근 최 회장 소유의 와이더덴닷컴 주식을 SK텔레콤에 팔고 그 자금으로 자사 주식을 사려다 주주들의 반발로 중도 하차했다.
공석으로 비어 있는 SK그룹 회장에 언제쯤 취임할지도 관심이다. 최 회장은 “꼭 선장이 있을 필요는 없다. 어차피 우리는 사람 아닌 시스템 중심의 경영으로 간다. 어느 날 갑자기 회장이나 사장이 사라져도 회사가 아무 어려움 없이 굴러갈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막노동’을 한 소감을 묻자 “여기 저기 불려 다니느라 일을 제대로 한 것 같지도 않다”고 말했다. 그는 ‘지방행(行)’에서 예상치 않은 취재를 당한 데 대한 약간의 당혹감을 나타내면서 “다음에 만날 기회가 있으면 좀 더 할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고 말을 맺었다.
천안=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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