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출신 ‘정책실험’ 실패이유]‘지나친 理想’ 시장서 외면

  • 입력 2004년 8월 13일 18시 42분


《현 정부 출범 후 ‘경제정책 실세(實勢)’로 꼽혔던 이정우(李廷雨)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의 영향력이 최근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본격적 민주화 정권’인 김영삼(金泳三) 김대중(金大中) 정부에 이어 노무현(盧武鉉) 정부에서도 ‘개혁’을 내걸고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보좌한 학자 출신 실세 등용 실험이 사실상 실패로 끝남에 따라 ‘장밋빛 이상’과 ‘냉엄한 현실’의 차이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실패로 끝난 학자출신의 ‘정책실험’=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3년 2월 첫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으로 박재윤(朴在潤) 당시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를 임명했다. 박 전 수석은 김 전 대통령의 후보시절부터 ‘경제특보’로 선거캠프에 참여했으며 ‘YS의 경제가정교사’로 통했다.

그는 수석을 맡은 뒤 주도한 것은 ‘신(新)경제 100일 계획’. 그러나 공산품 가격 동결 같은 조치는 이미 한국 경제가 상당히 고도화된 상황에서 시장논리와 거리가 멀다는 지적을 받았다.

또 기존 경제관료 조직과도 심각한 마찰을 빚었다. YS정부 초기 경제정책을 사실상 주도했던 그의 독주는 1994년 통상산업부 장관으로 옮아가면서 사실상 막을 내린다. 박 전 수석의 빈자리는 경제기획원에서 잔뼈가 굵은 정통 경제관료 출신인 한이헌(韓利憲)씨가 맡았다.

김대중 정부 하에서도 적어도 초기에는 ‘정통 관료’보다는 ‘학자’ 출신이 신임을 받았다. 김태동(金泰東) 성균관대 교수가 첫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에 올랐다. 김 교수는 이른바 ‘DJ노믹스의 산실’로 통하는 ‘중경회(中經會)’ 소속으로 ‘개혁’과 분배 등을 중시했다.

그도 ‘경제개혁’을 들고 나왔다. 그러나 대기업과 경제관료에 대한 강도 높은 공격 등 설화(舌禍)와 관료조직과의 마찰 등이 겹치면서 3개월 만에 대통령정책기획수석비서관으로 밀려났다. 그의 후임은 정통관료 출신으로 현재 열린우리당 의원인 강봉균(康奉均)씨가 맡았다.

이정우 위원장도 경북대 교수 출신이다. 그는 특히 빈부격차의 핵심 요인으로 부동산을 지목하면서 현 정부 들어 강도 높은 부동산 정책을 주도했다. 이에 대해 부동산 가격을 잡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사실상 ‘거래 중단’을 가져왔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이 위원장은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장기(長期)주의’라고 지칭하면서 경제상황이 극도로 악화된 상황에서도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는 좋아질 것”이라고 말하는 등 현실감각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받았다.

▽실패의 원인은?=경제전문가들은 학자 특유의 ‘지나친 이상주의’를 실패의 중요한 원인으로 꼽는다.

LG경제연구원 오문석(吳文碩) 상무는 “기존 경제관료에 비해 학자출신들은 문제의식은 뛰어나지만 실행 가능성이 떨어지는 정책을 추진하다가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며 “개혁을 추진하더라도 ‘실용주의적’인 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조직생활 경험이 적어 기존 관료조직과 마찰을 일으키는 것도 한 원인으로 꼽힌다.

물론 학자 출신이라고 반드시 실패하는 것은 아니다. 서강대 교수 출신으로 경제부총리를 거쳐 국무총리까지 지낸 남덕우(南悳祐)씨는 관가(官街)로 옮겨서도 성공한 대표적 학계 인사로 꼽힌다. 남 전 총리는 YS정부 이후의 ‘학계 출신 경제정책 실세’보다 실용주의적 사고방식이 강하다는 점이 눈에 띈다.

공종식기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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