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의 후폭풍이 몰아치던 1999년 가을 유명 증권회사에서 근무하던 A씨(당시 38세)는 뜻밖의 명예퇴직을 당했다. 방황하던 A씨는 이듬해 9월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떠나기로 마음먹고 미용기술을 배워 결국 독립기술이민비자를 받아 고국을 떴다.
서울 시내의 한 대형 병원에 근무하던 외과의사 B씨(당시 30세)는 촉망받는 의사였지만 격무에 시달리다 1999년 “좁은 땅에서 북적거리며 살고 싶지 않다”며 이민을 결심했다. 한국의 자녀교육 환경에 염증을 느낀 것도 이유가 됐다. B씨는 부인과 함께 그해 겨울 캐나다 밴쿠버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외환위기를 겪은 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인 이민의 밑그림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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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된 이민층이 전 연령층에서 핵심적 생산연령층으로, 또 단순노무직에서 전문직종으로 집중화됐다.
▽핵심 경제활동연령층이 주도=1990년 미국 이민자 중 10, 20대가 39.1%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 그러나 1996년 들어 30, 40대가 이들을 추월하기 시작, 외환위기 직후인 2000년에는 38.2%에 달했다.
호주의 경우도 2001년 한국 출신 이민자의 평균 연령이 30.8세였다.
1998년 미국 이민자 중 45%에 불과하던 기혼자의 비율은 2000년 57%에 육박해 미혼자 비율의 1.5배에 달했다. 반면 1990년 각각 10.6%, 7.3%를 차지하던 유소년층과 노년층의 비율은 90년대 후반 각각 6%, 4%대로 감소했다. 성별 분포를 보면 1990년대 내내 여자(56%)가 남자(44%)보다 높은 비중을 보였다.
이민대행업체인 국제이주개발공사 관계자는 “지난해 고객들의 신상을 분석한 결과 미국의 경우 ‘39세의 서울 거주 대졸 직장인’이 표준으로 분석됐다”며 “캐나다와 호주 등도 이민법의 강화로 이민자의 나이가 경제활동 연령층으로 낮아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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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전문직의 이민 급증=1990년대 후반의 외환위기와 이공계 홀대는 이공계 기술직 등 전문인력의 해외이민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지역으로 이민을 떠난 한국의 이공계 전문직은 1990년 300명에서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552명, 2000년 903명으로 급증했다.
이들은 ‘35세 정년’이라는 이공계 위기론이 촉발된 당시 장래에 대한 불안감과 구직난을 피해 ‘기회의 땅’을 찾아 해외로 빠져나간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같은 기간에 미국으로 이민 간 경제활동인구 중 단순노무직과 서비스직의 비율이 각각 12%, 9%대로 급락해 ‘생계형 이민 시대’가 서서히저물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 이민 분석=한국인의 미국 이민을 지역별로 보면 캘리포니아주가 1990년 30.1%에서 2000년 27%로 다소 줄어든 데 비해 뉴저지, 버지니아, 워싱턴주 등은 각각 1∼2%포인트씩 늘어났다.
전통적으로 가장 많은 한인이 분포했던 로스앤젤레스 등 캘리포니아에서 다른 대도시 지역으로 분산되기 시작한 것. 1992년 로스앤젤레스에서 발생한 폭동도 한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 내 이민자들을 국가별로 보면 2000년에 멕시코 출신이 17만3500여명으로 1위를 차지했고 4만여명씩을 보낸 중국 필리핀 인도 출신이 2, 3, 4위를 기록했다. 1980년대에 매년 미국 전체 이민자의 5∼6%를 보낸 한국은 2000년 1만5829명을 기록해 국가별 순위는 14위로 낮아졌다.
전지원기자 podragon@donga.com
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
신수정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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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이민국 자료 어떻게 분석했나▼
본보는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이민규(李珉奎) 교수와 함께 미국 정보공개법(FOIA)에 따라 미국의 탐사보도협회(IRE)를 통해 연방이민국(USCIS) 자료를 넘겨받았다.
USCIS는 매년 수십만명에 이르는 이민자의 이름과 신상정보를 관리하고 있으며 현재 2000년도 자료까지 전산화했다.
이 자료에는 연간 수십만명이나 되는 미국 이민자의 나이, 성별, 직업, 출생국, 결혼 여부, 이민 사유, 미국 내 정착 지역 등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본보는 이 중 국가별 코드로 한국 출신 이민자를 추출해 ‘누가 왜 이민을 가는지’를 상세히 분석했다.
한국 외교통상부에서도 매년 각국으로 이민을 가는 한국인에 대한 자료를 관리하고 있으나 이 자료에 나타난 수치는 실제 이민자 수의 30∼50%에 불과하다. 이 교수는 “외교부의 이민자 통계는 합법적으로 이민여권과 비자를 받아 출국하는 이민자만 집계한 것”이라며 “그러나 실제 이민자는 관광 또는 유학 목적으로 출국했다가 현지에서 영주허가를 받아 정착하는 경우도 포함돼 이보다 훨씬 많다”고 설명했다.
▼2001년 이후 이민 경향은▼
2001년 이후 각국으로 이민 간 한국인의 신상정보 자료는 아직 공식적으로 공개된 것이 없다.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전체 한국인 이민자 수는 1998년 1만3974명에서 2000년 1만5307명으로 증가한 뒤 다시 지난해 9509명으로 격감했다.
국가별로는 캐나다와 미국이 각각 48.5%, 44.2%로 양분하고 있다. 그러나 외교부도 전체적인 통계 수치만 갖고 있을 뿐 상세한 정보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추세에 대해 이민학자나 대행업체들은 “국가별로 선별적인 이민수용책이 강화됨에 따라 전체 수가 줄어들고 있고 이민자의 학력과 경력도 높아지고 있다”고 말한다.
국가간 이민의 흐름이 자유롭던 이전과는 달리 최근에는 자국의 경제활동에 꼭 필요한 인구를 채우기 위해 이민을 받는 경향이 짙어진 것. 이 때문에 한국인의 해외이주도 이민대상국의 관련 법률 변화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 영어권 국가에서는 국내 대학의 등급을 평가해 놓은 자료 등을 바탕으로 이민자들의 학력이나 경력을 철저히 검증한 뒤 이민허가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국제이주개발공사 서일석 상무는 “자국의 노동시장 활성화를 위해 즉시 노동시장에 투입할 수 있는 이민자들을 선호하고 있다”며 “이를 위해서는 영어 실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영어에 자신이 있는 30대 고급 인력들의 비율이 높아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미국 캐나다 등 전통적인 주요 이민국가 외에 남아프리카공화국과 피지 파라과이 말레이시아 등 ‘제3세계’로 이주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이들 국가는 선진국보다 이민 절차가 덜 까다롭고 경비도 덜 들어 적은 비용으로 이민을 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주로 찾는다. 특히 남아공의 경우 공업이 발달돼 있고 엔지니어를 우대한다는 사실 때문에 많은 이공계 엔지니어들이 이민을 꿈꾸고 있다.
이주공사 ‘클럽이민’ 홍금희 이사는 “요즘엔 선진국에 비해 자격 조건이 간단하고 수속 기간이 짧은 제3세계 이민 희망자가 늘어나고 있다”며 “특히 최근 들어 피지에 대해 묻는 전화가 꾸준히 걸려오고 있다”고 말했다.
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
전지원기자 podragon@donga.com
신수정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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