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법대에 입학하는 것은 남자에게는 죽을 때까지 미래가 보장되는 프리미엄이지만 여성에게는 오히려 살아가는 데 장애가 됩니다.”
이 대학을 졸업하고 1995년 사법시험 전체수석을 했던 당시 사법연수원생 정모씨(34)가 했던 말이다.
7년 후 그의 생각은 얼마나 바뀌었을까.
현재 지방법원 판사인 정씨는 “검찰이나 법원에서 성차별은 없다”고 단언했지만 “현재 일이 없는 변호사의 절반 이상이 여성”이라며 로펌 등의 입사에 성차별이 있음을 시사했다.
서울대 경제학과 95학번 권정하씨(30)는 며칠 전 첫아이를 낳고 출산휴가 중이다. 그는 행정대학원을 거쳐 뒤늦게 S보증기금에 입사했다.
그러나 정씨나 권씨는 극히 예외에 속하는 경우다. 당시 인터뷰에 등장한 여학생 중 연락처가 확보된 60여명을 한 달에 걸쳐 추적했으나 대부분 연락이 닿지 않았다. 직장을 갖지 못했거나 결혼과 육아 등으로 바빠 동문과 연락할 수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보고서 작성에 참여했던 강모씨(33·부산대 신문방송학과 졸업)는 “당시 여학생들은 지금쯤 30대 초반으로 한창 출산을 하거나 육아 때문에 사회생활을 하기 힘든 시기”라며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별로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 역시 여러 차례 언론사 입사시험에 실패하고 어린이영어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다.
부산대 상과대학에 다녔던 이모씨(31)는 서울에서 여러 차례 대기업 입사시험에 도전하다 포기하고 2년 전 결혼해 전업주부가 됐다.
2003년 현재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여성의 취업률은 61.6%로 남성의 89.7%보다 28.1%포인트나 낮다. 그나마 취업 분야도 학원 강사 등 임시직이나 비정규직이 대부분으로 분석된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연구강사였던 한설혜씨(37)는 그토록 원하던 교수가 되지 못하고 서울 송파구보건소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여성의 사회참여에 가장 큰 걸림돌은 육아”라며 “이 때문에 교수임용에 여성이 불리하다”고 주장했다.
취업이 안 되는 여대생들은 일단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형편이 허락하는 경우 해외유학을 떠난 경우가 많았다.
“우리 대학원에 결혼한 여자 선배 2명이 있는데 공부하랴 집안일하랴 너무 힘들어 보인다”고 말했던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석사과정 1년차 김모씨 역시 2000년 미국 메릴랜드대로 유학을 떠났다.
전남대 컴퓨터공학과 96학번 이모 노모 윤모씨의 남학생 동기인 양동섭씨(29)는 “당시 졸업생 80명 중 8명이 여학생이었는데 이후 동창회에 나오지 않아 소식을 알 수 없다”고 밝혔다.
김진경기자 kjk9@donga.com
▼‘그 많던 여학생들은…’▼
재미교포 박상이씨(38·당시 서울대 국사학과 석사과정)와 그 친구들이 1997년 8월 출간한 성차별에 관한 현장보고서. 대학에 재학 중이거나 졸업한 여성 200여명의 경험담을 통해 대학과 취업과정에서의 성차별을 생생히 고발해 큰 파문을 불렀다. 이 책은 출간 직후 서울대 연세대 등에서 여성학 관련 교재로 채택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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