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회장의 신념은 “6·25전쟁을 거치며 자라난 굶주린 아이들을 가르쳐야만 국가의 미래도 있다”는 것이었다.
보험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 사업 인가조차 받기 어렵던 시절, 갖은 고난 끝에 결국 ‘대한교육보험’이라는 회사명이 적힌 인가서를 받아든 그는 결국 세계 최초의 교육보험을 탄생시켰다.
또 신 회장은 “일하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일한다”는 현장 중심의 경영철학을 구현했다. 이런 철학은 인재 중심 경영으로 이어졌다. 경영 노하우와 철학을 ‘새경영’으로 묶어 발표해 사원 모두가 공유하도록 했다.
조직원 서로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했기에 그 스스로 임직원들과 자주 어울렸다. 기업의 성공은 부를 축적하기보다는 사람을 축적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신 회장은 무엇보다 감성적인 사람이었다. 그 점이 그의 주위에 사람들이 모이도록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라고 평소 강조했던 터라 교보문고를 만들 수 있었다.
그는 늘 주위 사람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기 위해 노력하던 사람이었다.
그런 생각은 곧 교보빌딩 주위를 지나는 서울시민 전체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겠다는 뜻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가 지금 광화문 네 거리 교보빌딩에 걸려 있는 대형 광화문 글판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신 회장이 생전에 필자에게 던진 격려와 조언이 큰 도움이 됐다.
특히 섬유 수출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던 필자가 국내 내수시장 진출을 고려하던 시점에 “국내 패션 브랜드를 만들어 글로벌 브랜드로 키워내라”던 그의 조언이 오늘의 신원을 만들었다 해도 과장이 아니다.
1990년 국내 내수시장에 진출하며 처음 만들었던 여성복 브랜드 ‘베스띠벨리’와 ‘씨(SI)’가 올해 중국에 진출해 첫선을 보였다. 신 회장의 조언대로 국내 브랜드가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고 있다.
이 모습을 꼭 하늘에서 신 회장이 보고 있기를 바란다.
그동안 우리 경제의 성장 동력 역할을 해왔던 섬유 산업이 최근 내수 침체와 대외 환경의 변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신 회장처럼 아낌없이 과감한 조언을 해줄 큰 어른의 빈자리가 느껴지는 시절이지만 ‘발명가적 개척정신’을 가슴에 담고 살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박성철 신원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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