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안고 뛴다]<1>대구 섬유업체 서광산업

  • 입력 2004년 9월 20일 17시 32분


서광산업 구자균 회장은 “기업이라는 자전거는 페달을 계속 돌려주지 않으면 넘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구 회장이 자사 시험실에 설치한 염색용 시료 자동 분석기를 소개하고 있다. -대구=고기정기자
서광산업 구자균 회장은 “기업이라는 자전거는 페달을 계속 돌려주지 않으면 넘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구 회장이 자사 시험실에 설치한 염색용 시료 자동 분석기를 소개하고 있다. -대구=고기정기자
《좀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경기 침체로 산업 기반이 뿌리에서부터 흔들리고 있다. 산업 구조의 양극화, 사양산업의 사업구조조정 실패, 중국의 추격, 비(非)우호적인 경제외적 환경 등이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일부에서는 기업이 추구해야 할 ‘역할모델’조차 없다는 자조도 나온다. 하지만 여기서 주저앉으면 영원한 ‘2류 경제’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어려워도 ‘이 땅’은 우리와 후손들이 살아가야 할 곳이다. 그만큼 지금 이 시점이 한국 경제의 미래를 좌우하는 중요한 시기다. 본보 경제부는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고 역경을 헤쳐 나가는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밀착취재를 통해 ‘희망의 단초’를 보여주는 시리즈를 10회에 걸쳐 연재한다.》

섬유회사들이 빼곡히 몰려있는 서대구 산업단지. 16일 들른 이곳은 주중(週中)인데도 공단 특유의 활기를 느끼기 어려웠다. 한국 섬유산업의 현주소가 한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공단 한가운데에 있는 서광산업은 사정이 달랐다. 고막을 찢는 듯한 기계음, 직원들의 ‘기분 좋은’ 고함소리, 지게차의 바쁜 움직임은 1980년대의 호황을 연상케 했다.

바이어들과의 전화 통화로 자리에서 일어설 틈도 없던 이 회사 구자균(具滋均·52) 회장은 시선을 맞추지도 못한 채 “일단 앉아계세요”라며 기자를 맞았다. 그의 작업복에는 ‘세계 최고의 품질 확보’라는 마크가 또렷하게 박혀 있었다.

▽전통산업 속의 첨단기업=서광산업은 대구에서는 소문난 ‘알짜 기업’이다.

종업원 160여명에 지난해 매출 180억원, 영업이익은 20억원. 규모만 놓고 보면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만만한 회사가 아니다. 섬유산업에서도 염색 부문은 사양 중의 사양산업이다. 하지만 서광산업의 평균 납품 단가는 1야드에 850∼900원으로 일반 염색물(150∼200원)의 4배를 넘는다.

비결은 교직물 염색. 일반 염색은 중국이 세계 시장을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반면 가로 세로로 엮인 서로 다른 종류의 실을 두 번 물들이는 고급 교직물 염색 회사는 한국에서도 10여개 업체에 불과하다.

서광산업은 올해 초 세계 최대 섬유회사인 인비스타(듀폰의 옛 섬유사업부문)에 5년간 직물을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조건은 앞으로 200가지의 기능성 천을 개발한다는 것. 서광산업은 이미 섭씨 영하 50도에서도 굳지 않는 ‘서모라이트’ 직물, 상온에서 2∼3분이면 마르는 천 등 120여종을 개발했다.

이 회사는 또 미국 이탈리아 등 5개국에 현지 에이전트를 채용해 대기업을 통하지 않는 직수출 체제도 갖췄다.

▽“기업은 두 바퀴로 가는 자전거”=서광산업의 성공 비결은 역시 투자와 혁신이었다. “매년 매출액의 20% 가까이를 새 설비를 들여오는 데 씁니다. 하지만 아직도 세계의 ‘섬유 명가(名家)’들과 경쟁하려면 갈 길이 멉니다.”

야간 공업고등학교를 나올 정도로 어려운 유년기를 보냈던 구 회장은 기술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생각만큼은 확고했다. 회사를 처음 열었던 1990년에도 당시 일본에서 막 개발된 피치스킨(복숭아 표피처럼 부드러운 섬유) 제조로 시작했다.

1995년부터는 교직물 염색 가공을 시작했다. 섬유 선진국들이 교직물 쪽으로 방향을 튼데 착안한 것이었다.

비용 절감을 통해 가격을 낮춰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1998년 이탈리아산 공장자동화 시스템을 10억원에 들여왔다. 외환위기가 한창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다소 무모한 투자였다. 그는 2002년에도 국내 최초로 독일산 연속염색기를 도입했다. 이 기계는 당시 전 세계에서 4대 뿐이었다.

“이상한 사람이라는 소리도 들었어요. 하지만 기업은 두 바퀴로 가는 자전거인데 페달(투자)을 안 돌리면 넘어지지요.”

구 회장은 현재 인비스타에 납품할 섬유를 대구 섬유개발연구원과 공동 개발하고 있다. 또 일본 인터플레인사(社)와 기능성 천을 함께 연구 중이다.

기업인이라면 대부분 그렇듯 그도 몇 번이나 힘든 고비를 맞았지만 기술력으로 활로를 찾았다. 그러나 회사가 탄탄한 기반을 갖춘 지금이 더 어렵단다.

“이 나라에서 기업 못하겠다는 소리가 많습니다. 틀리지 않은 지적입니다. 정치는 정치대로, 경제는 경제대로 희망을 찾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어떡합니까. 그래도 기업은 뛰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구=고기정기자 koh@donga.com

◇다음은 생산설비 해외이전이 러시를 이루는 가운데 한국에서 묵묵히 기술 경쟁력으로 승부를 거는 기업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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