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같은 사실은 금융감독위원회가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소속의 이종구(李鍾九·한나라당) 의원에게 제출한 ‘2004년도 제15차 증권선물위원회 의사록(2004.8.25)’ 문건에서 드러났다.
이날 회의에선 통상 단일안을 놓고 합의를 이끌어 내왔던 전례와 달리 ‘중징계 3단계’(1안)와 ‘주의적 경고’(2안) 등 2가지 대안을 놓고 격론이 벌어졌다.
위원간에 끝내 합의를 하지 못해 극히 드물게 표결에 부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찬성 3명 △반대 1명 △기권 1명으로 1안이 채택된 것으로 확인됐다.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와 정무위원회는 김 행장 징계의 적정성 문제를 이번 국정감사 대상에 포함시킬 방침이어서 ‘신 관치(官治)’ 논란이 재연될 것으로 보인다.
▽‘고의 아닌 과실 아니냐’ 논란=금감위 회의실에서 열린 이날 회의에 출석한 위원은 이동걸 전 증선위원장(전 금감위 부위원장)과 이우철(李佑喆) 상임위원, 비상임위원인 오용석(吳勇錫) 변호사, 이상빈(李商彬) 한양대 교수, 곽수근(郭守根) 서울대 교수 등 5명.
한 위원은 “국민카드의 이월금을 승계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선택한 고육지책(苦肉之策)이었다. 카드 대란을 막기 위한 정책적인 상황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신중론을 폈다.
그는 또 “국민은행이 기업회계기준에 위반되는 결정을 내린 것이 중과실이 되는 것으로 사전 인지했다면 그런 위반 행위를 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과실로 판단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다른 위원은 “세금을 적게 낸 것은 국세청이 간여할 부분이지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감독해야 할 금융감독당국 입장에서 조치해선 안 된다”고 징계불가론을 제기했다.
일부에선 “중과실 결정을 내리면 대외로 알려져 미국시장에 상장 중인 국민은행이 증권관리위원회(SEC)로부터 재차 조사받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이 밖에 위원들은 “변호사 회계전문가 국세청 등 전문가의 의견을 믿고 의사결정을 내린 것을 문제 삼는다면 온당치 않다”면서 “다른 사람을 오도해서 특정 집단의 이득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닌 이 사안은 중과실 또는 과실로 판단해야 하며 누락 또는 은폐는 아니다”고 주장했다.
▽김 행장 사태 국감으로=이에 대해 금감위 간부를 중심으로 한 위원들은 “다른 합병은행과 달리 국민은행이 위배 사실을 알면서도 회계법인과 의논해 처리한 것은 과실이 아니라 고의다”라고 반박했다. 이들은 “이를 불문 처리할 경우 많은 기업이 세무적인 유리함을 이용해 기업회계기준을 무시하는 상황이 발생하므로 단호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 과실로 처리할 경우 감독당국의 의지가 느슨한 것으로 시장에 비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회의록을 보면 징계 반대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훨씬 많았다.
금감위 상임위원을 지낸 이 의원은 “김 행장 징계의 적절성과 징계조치 과정에서 관치금융 소지는 없었는지를 국감에서 따지겠다는 의원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민주당 김효석(金孝錫) 의원은 “LG카드 사태 처리 과정에서 정부가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김 행장을 감정적으로 처리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밝혔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金행장 징계 쟁점은▼
회계처리기준 위반이 은행장의 연임을 막을 정도로 무거운지에 대한 양형(量刑) 논란이 핵심 쟁점이다. 국민은행은 2003년 9월 자회사인 국민카드를 합병했다. 이후 2003년 12월 말 결산을 하면서 합병 전 국민카드가 부실자산에 대해 쌓아야 할 대손충당금 등 1조2664억원을 합병 후 은행이 대신 쌓는 것으로 회계처리를 했다.
이를 통해 국민은행은 실제보다 손실을 3096억원이나 더 늘렸고 이에 따라 법인세 3106억원을 내지 않았다. 국민은행이 합병 관련 회계처리기준을 위반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당사자와 전문가들의 이견이 별로 없는 편이다. 다만 ‘은행장 연임 불가’라는 징계 조치가 너무 무겁다는 게 국민은행과 중징계 반대파들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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