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자동차 회사의 최고경영자(CEO)들이 ‘고강도 마케팅’에 몸을 던지고 있다.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내수 침체의 무풍지대(無風地帶)로 여겨졌던 수입차 업계도 타격을 입을 조짐을 보이자 CEO들이 직접 일선 현장에 뛰어들고 있다.
특히 새로 취임한 외국인 CEO들은 한국에 대한 기존 정보를 수정하느라 더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경기 위축으로 한국의 소비성향이 달라져 본사에서 습득한 지식을 정정하지 않으면 적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달 수입차 등록대수는 2034대로 한 달 전(2244대)보다 9.4% 줄었다.
▽한국형 소비문화 파악=지난달 부임한 도미니크 보쉬 아우디코리아 사장은 요즘 한식집을 돌며 아우디 차량의 우수성을 홍보하고 있다.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식당에서 한국 음식을 들며 한국 문화를 익혀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
하지만 의자가 없는 식당에서 ‘양반다리’를 한 채 불편한 식사를 하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니다. “제가 앉아 있을 수 있는 한계는 3시간입니다. 하지만 어떡합니까. 익숙해져야지요.”
그는 또 개인교사를 따로 채용해 한국어를 익히고 있다. 자동차 등 경제관련 뉴스는 물론 정치 사회 문화 부문까지 포함된 신문 번역본을 탐독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쉬는 날이면 미술관 등에 들러 고급 소비층의 취향을 파악하느라 분주하다.
보쉬 사장은 “하루아침에 아우디 인지도를 높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며 “하지만 지금까지 파악한 바에 따르면 한국 고객들은 새로운 트렌드를 아주 빨리 받아들이고 있어 강도 높은 홍보와 밀착 마케팅을 벌인다면 가능성이 높은 시장”이라고 평가했다.
내년 중반부터 차를 판매할 계획인 한국닛산의 케네스 엔버그 사장은 ‘삼겹살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한국형 소비문화를 파악하는 케이스. 올해 3월 취임한 그는 일본의 닛산 본사에서 임원이 와도 서울 강남지역의 삼겹살집으로 초대할 정도다.
엔버그 사장의 할아버지는 한국의 광복 직후 미군정 대령으로 부임했고, 아버지는 6·25전쟁에 참전해 한국과는 인연이 깊은 편. 하지만 본인은 한국에 대해 깊숙이 알지 못하는 만큼 바닥에서부터 한국적 정서와 문화를 익히고 있다는 게 주변의 설명이다.
▽영업사원 역할까지 도맡아=외국인 CEO들이 달라진 한국 소비문화 파악에 여념이 없다면 한국인 CEO들은 영업사원 역할까지 맡느라 바쁘다.
정우영(鄭祐泳) 혼다코리아 사장은 각종 시승행사에 의사나 변호사 등 주변의 지인(知人)들을 직접 동원하고 있다. 차를 태워줌으로써 이들을 실질적인 구매자로 바꿀 수 있는 데다 주변에 홍보를 해줄 수도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또 처음 보는 손님이 시승을 하더라도 보조석에 동승해 성능과 제원을 설명하는 등 전방위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수입차 업계에서 유일한 여성 CEO인 이향림(李鄕林) 볼보자동차코리아 사장은 부산을 포함한 전국 15개 매장을 ‘내 집 드나들듯’ 방문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3월 취임한 이후 이미 2번 이상 각 매장에 들렀으며 서울 경기지역은 별도로 한 달에 한두 번씩 방문한다. 이 사장은 매장에서 딜러들을 만나 판매 동향을 일일이 확인하고 마케팅 전략 수립에도 조언을 해주고 있다.
고기정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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