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군 특급 토지’ ‘36조원 투입 특급 관광단지’ ‘관광기업도시로 격상’ 등 중개업소들이 걸어놓은 현수막이 펄럭이고 있다. 그에 비하면 군청에서 한쪽에 붙여 놓은 ‘무허가·무등록 중개업소 단속’ 현수막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해남군 황산면 시등리 맹승호 이장은 “마을 사람과 외지인, 일부 지역은 이장까지 팀을 이뤄 무허가로 땅을 알선하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지역주민들 사이에도 분쟁이 끊이질 않는다”고 말했다.
해남군청과 주민들에 따르면 8월 토지거래허가지역으로 묶인 산이면을 비롯해 인근의 황산면 마산면 등에 7월 이후에만 30여개의 중개업소가 새로 생겼다. 이 중 목포나 광주, 서울에서 옮겨 온 것이 10개 정도다.
강원 원주시 단계동 봉화산 택지지구. 인근 중개업소 곳곳에 서울과 경기 번호를 단 차량들이 빼곡히 주차돼 있다.
서울에서 병원을 경영하는 K씨는 “며칠 전 평당 20만원짜리 땅을 소개받았는데 막상 계약을 하려고 했더니 땅 주인이 22만원을 달라고 한다”고 말했다.
전반적인 경기 침체 속에서도 전국 곳곳에서 땅 투기 바람이 불고 있다.
최근 땅 투기의 최대 호재(好材)는 국토균형발전을 명분으로 잇달아 발표되는 지방의 각종 대형 개발계획들.
전문가들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낙후된 지방을 개발하겠다고 하는 취지는 좋지만 현실성이 낮은 계획들을 남발해 자칫 땅값만 올릴 가능성도 높다고 지적했다.
▽전국 곳곳이 땅 투기=해남군과 영암군 삼호읍 일대. 전남도가 추진하는 이른바 ‘J프로젝트’의 중심지다. 이 일대 논밭과 벌판을 108홀짜리 골프단지, 카지노, 호텔, 실버타운 등이 포함된 해상(海上) 복합레저타운으로 탈바꿈시킨다는 야심에 찬 개발계획이다.
전북 군산시 새만금 간척지 인근 지역도 역시 ‘관광레저형 기업도시’ 후보지로 거론되고 있다. 이 지역이 선정됐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유치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정보만으로 이 일대 땅값이 껑충 뛰었다.
군산 앞바다 섬인 선유도 무녀도 등의 대지는 외지인들이 사들이기 시작해 연초 평당 100만원을 밑돌던 것이 최근에는 120만원까지 뛰었다는 게 현지 부동산중개업자의 말이다.
신행정수도 주변인 충남 일대의 땅값이 오른 것은 물론이다. 올해 건교부가 발표한 공시지가 상승률 10위권 지역 가운데 경기 파주시를 제외한 9곳이 충남 지역이다.
서울시립대 정창무 교수(도시계획학)는 “개발계획이 한꺼번에 쏟아지면 투기가 발생할 수밖에 없고, 그러면 국민이 근로의욕을 잃고 한탕주의에 빠지게 된다”면서 “정부가 개발계획을 발표할 때는 사전에 이런 심리나 투기 가능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건교부 유윤호 토지국장은 “올 상반기까지 전국 토지가격 평균 상승률은 2.47%로 대체적으로 안정돼 있다”면서 “일부 개발계획으로 땅값이 오르고 있는 지역에 대해서는 강력한 투기 단속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개발 현실성은 있나=지자체들이 발표하는 프로젝트에는 대규모 골프장 건설, 해양리조트시설 유치계획 등 비슷한 내용이 중복되어 있다.
전남은 해남에 108홀짜리 골프리조트를, 전북은 새만금 간척지에 540홀짜리 세계 최대 규모의 골프단지를 만들겠다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장춘 경기대 관광전문대학원장은 “대규모 레저단지가 성공한 사례는 에버랜드 등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투자 주체인 기업들의 반응도 미온적이다. 애초에 기업도시를 제안했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정부의 특별법안에 대해 “현재 법안대로 하면 기업도시를 만들려는 기업이 거의 없을 것 같다”고 밝혔다.
신행정수도, 혁신도시, 지역특구 등 각종 도시 및 관광레저단지 건설 등에 들어가는 막대한 재원(財源) 조달도 문제다.
신행정수도에만 정부 발표로도 45조6000억원이 들어가고 야당 학계 등 일부에서는 100조원이 넘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전남이 추진하는 ‘J프로젝트’에는 36조원의 국내외 투자가 필요할 것으로 추정된다.
김광현기자 kkh@donga.com
해남=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원주=이은우기자 libra@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