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경기 오산시 고현동 동신제약 공장에서 만난 김종하 생산본부장(상무)은 “올해는 추석 연휴에도 이틀은 모두 출근해 공장을 가동키로 했다”고 말했다. 가을·겨울 환절기에 대비한 독감백신을 제때 공급하려면 당분간 생산라인을 풀가동해야 하기 때문.
경기의 영향을 덜 받는다는 제약업계도 요즘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동신제약은 예외다. 독감백신 등 각종 백신과 알부민 등 제품 기반이 탄탄한 데다 인력과 기술에서도 경쟁력이 높은 덕분이다. 이 회사는 올해 24.1%의 매출신장률로 연간 1000억원 매출 달성을 기대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추석 연휴에 제대로 쉬지 못할 형편인데도 직원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밝았다.
“어떻게 살린 회사인데 이 정도 바쁘다고 푸념하겠습니까?” 김지선 생산부장은 “전 사원의 헌신적인 노력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동신제약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를 구한 직원들=혈액제제 생산으로 잘나가던 동신제약은 1997년 말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위기를 맞았다. 무리하게 골프장을 지은 게 화근이 돼 부도를 낸 것. 법정관리를 거쳐 다른 곳으로 경영권이 넘어갔지만 새 대주주가 회사보다 개인이익만 생각해 경영이 더 나빠졌다고 임직원들은 전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의 또는 타의로 회사를 떠났다.
전현직 임직원들은 회사를 상대로 소송에 나섰다. 새로운 대주주가 공금횡령으로 구속되면서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경영은 돌이킬 수 없는 상태였다. 사무실로 쓰던 건물마저 경매로 넘어가 서울 본사 직원들은 길거리로 나앉았다. 변진호 사장은 “한 달간의 공장 더부살이 끝에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 건물지하실을 빌려 사무실을 냈는데 정말 암담했다”고 돌이켰다.
직원들은 스스로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인원을 120명 가까이 줄이고 임금을 동결했다. 채권자들을 설득해 부채 절반을 탕감 받고 전 직원이 마케팅 전선에 뛰어들었다. 이 같은 직원들의 노력이 알려지면서 외부 투자가 잇따랐다. 회사 경영도 1년여 만에 거짓말처럼 정상을 회복했다.
▽노사 상생으로 도약=동신제약은 부도 이전에는 노조 파업을 연례행사처럼 겪었지만 이 같은 관행은 사라졌다. 공멸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모두가 회사의 주인’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2002년에는 임금을 21% 올려주겠다고 했더니 노조가 오히려 걱정했어요. 그래서 매출만 30% 늘리면 된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목표가 이뤄지더군요.”
변 사장은 “노사간 상생의 일체감이야말로 회사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강조했다. 그해 말 직원들은 100% 특별상여금도 추가로 받았다.
동신제약은 임금협상을 매년 1월이면 ‘칼같이’ 마친다. 회사는 분기마다 설명회를 열어 경영상태를 직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한다.
노사갈등은 현저히 줄었지만 임금은 동종업계 상위권 수준으로 높아졌고 직원 수도 과거 수준을 회복했다. 1인당 생산성은 4배로 올랐다. 생산설비 확장과 첨단기술 연구개발을 위해 지난해 100억원, 올해 50억원을 투입했다.
변 사장은 “백신을 주사기에 주입한 상태로 생산하는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라인이 조만간 가동되면 매출이 더 늘어날 전망”이라며 “지속적인 투자와 연구개발로 생명공학을 접목한 첨단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말했다.
오산=김태한기자 freewill@donga.com
◇다음은 끊임없는 도전정신으로 향수시장의 본고장인 프랑스를 직접 공략해 성공을 거둔 기업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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