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좋은 대기업들 추석보너스 적게 주는 속사정

  • 입력 2004년 9월 23일 18시 10분


“회사는 이익을 많이 냈는데 왜 추석 보너스는 이것 밖에 안 나올까….”

올해 상반기(1∼6월) 한국의 10대 그룹이 올린 순이익은 15조1148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6조8626억원에 비해 120.25%나 증가했다. 그러나 정작 대기업 직원들의 추석 보너스 봉투에는 이 같은 실적이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

23일 재계에 따르면 상반기에 6조2719억원의 순이익을 낸 삼성전자는 추석을 앞두고 정기 보너스인 기본급의 100%만 지급했다. 성과급은 내년 초쯤 지급할 계획이다. LG전자도 상반기에 순이익이 1조791억원이나 됐지만 추석에는 역시 정기 보너스만 지급됐다. 다른 기업에서도 ‘두둑한 추석 보너스’는 거의 없었다.

상반기에 실적이 좋았던 한 그룹은 국내 경제의 심각한 소비침체 등을 고려해 ‘이익 배분 성과급’(PS·Profit Sharing)의 일부를 추석 이전에 미리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결국 취소했다.

이 그룹 관계자는 “자금 여력은 충분하지만 내년에 경기가 나빠져 같은 수준의 보너스를 주지 못할 경우 노사관계가 불편해지고 실적이 나쁜 계열사나 그 외의 기업들에 과도한 부담을 지울 수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고 말했다. 돈 대신 상품권을 직원들에게 나눠주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이것 역시 포기했다.

이런 분위기는 기업들이 최근 주주에 대한 배당을 크게 늘리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2·4분기(4∼6월) 중 한국 기업들이 외국인 투자가들에 지급한 배당이 2조4379억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21.8%나 증가했다.

LG경제연구원 이한득(李漢得) 연구원은 “한국의 임금체계는 한 번 오르면 내려오지 않는 ‘하방 경직성’이 강해 기업 입장에서는 실적이 좋아도 예정된 것 외의 임금 지급을 꺼리게 된다”고 지적했다. 또 직원들에게 보너스를 많이 줄 경우 더 많은 배당을 바라는 투자자와 이를 지지하는 일부 시민단체 등의 항의를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점도 한 원인으로 꼽았다.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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