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빈주머니를 향한 유혹 ‘급전의 덫’

  • 입력 2004년 9월 24일 17시 24분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을 혹독한 장기불황 속에 맞게 되면서 ‘급전(急錢)’을 마련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적은 돈이라도 빌려보기 위해 저가품을 들고 전당포를 찾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명의를 빌려주고 돈을 빌리거나 불법 카드깡, 사채 등을 통해 급전을 마련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자칫 사기에 말려들 수도 있고, 고리의 사채로 인해 ‘빚의 수렁’에 빠져들어 패가망신하는 사례도 있다.》

▽카드깡은 최대 호황=급전을 구할 수 있는 손쉬운 수단인 이른바 카드깡은 각종 카드 결제일이 다가오는 월말과 추석이 겹치면서 최대 호황을 맞고 있다.

취재팀이 접촉한 한 업자는 “수수료는 28%니까 비싼 것 같으면 하지 말라. 안 그래도 손님이 넘쳐 바쁘다”며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보통 명절 직전에 활개를 치는 카드깡은 올해의 경우 불경기 탓에 더 심해져 평소보다 이용자가 30%가량 늘어난 것으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다.

특히 신용불량자뿐 아니라 안정적 직장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급전을 마련하기 위해 카드깡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서울 시중은행 직원 S씨(43)는 “이달 초 20%를 수수료로 떼고 2000만원을 카드깡으로 마련했다”며 “장손으로서 명절에 체면도 세워야 하고 가족 결혼식도 있다 보니 방법이 없었다”고 털어놨다.

사채시장도 최근 이용자가 몰려 월 40%를 넘나드는 ‘살인적인’ 이자율을 보이고 있다.

▽고액대출 유혹=무직인 김모씨(29)는 최근 한 인터넷 카페에서 ‘명의만 빌려주면 단기간에 고액을 마련해 준다’는 광고를 접했다.

김씨는 광고를 낸 업자 사무실을 찾아갔고 “당신 이름을 회사 대표자 명의로 빌려주면 금융기관 대출을 받아 수수료를 떼고 모두 주겠다”는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명의만 빌려주면 된다지만 정작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과 세금, 채무는 고스란히 이른바 이들 ‘바지사장’의 몫이다.

김씨는 당장 돈이 탐나긴 했지만 너무 위험하다는 생각에 도망치듯 사무실을 뛰쳐나왔다.

명의를 빌려줬다가 적발될 경우 명의를 산 업자와 함께 공범으로 처벌받기도 한다.

권모씨(34)는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600만원을 받고 불법 사채업자에게 명의를 빌려줬다가 23일 여신전문금융업법 위반 혐의로 서울 중랑경찰서에 구속됐다.

최근 인터넷 카페 등에는 ‘고액 바지 구함’, ‘추석 경비, 일주일에 500만원’ 등의 불순한 광고가 하루 수십건씩 올라오고 있다.

▽전당포엔 ‘잔손님’만 북적=손쉽게 급전을 마련할 수 있는 전당포에는 명절을 맞아 적은 돈이라도 빌려보려는 잔손님들이 많아졌다.

서울의 한 명품 전당포 업자는 “평소보다 20% 정도 대출 수요가 늘었다”며 “특히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추석 상여금 때문에 문의하는 경우가 잦아졌다”고 말했다.

전당포에서 보석 등 고가품은 찾아보기 힘든 것도 새로운 현상. 전당포 업자 김모씨(48)는 “많은 고객들이 캠코더 카메라 등 저가품을 들고 와 푼돈을 빌려가지만 그마저도 돈을 갚지 않고 물건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비제도금융조사팀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명절엔 급전 수요가 많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성행한다”며 “돈이 당장 급하더라도 꾹 참고 불법적인 일에는 개입을 안 하는 게 최선”이라고 조언했다.

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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