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장 클로드 슈라키]세계경제 ‘高油價딜레마’

  • 입력 2004년 9월 29일 18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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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가 배럴당 50달러라는 기록적인 수준까지 급등함에 따라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들이 딜레마에 빠졌다.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긴축정책을 펴느냐, 아니면 지속적 경제회복을 위해 성장정책을 펴야 하느냐는 고민이다.

유가 상승에 뒤따르는 경제 현상이 특히 골치 아픈 것은 물가 상승과 소비가 상반된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점 때문이다. 유가 상승은 필연적으로 물가 상승을 야기한다. 한편으로는 높은 에너지 가격이 소비세와 같은 역할을 해서 소비를 위축시킬 우려가 크다.

최근 유가 급등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최근 유가는 앞선 두 차례의 오일 쇼크 때처럼 갑작스럽게 값이 뛰어오른 것이 아니다. 오일 쇼크 땐 짧은 기간에 유가가 3배 이상 오르기도 했다.

둘째, 아직 유가가 사상 최고가까지 오르지는 않았다.

셋째, 에너지 절약과 에너지 생산의 다각화에 따라 오늘날의 경제는 과거에 비해 석유에 대한 의존도가 낮다.

이런 사실을 감안할 때 최근 유가 급등이 경기에 미치는 영향은 상대적으로 작다고 할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시뮬레이션 결과에서도 이런 사실은 잘 드러난다. OECD는 유가가 현재 수준으로 유지되더라도 세계 경제 성장의 감소 폭은 1%포인트 이하일 것으로 내다봤다.

일부 전문가들은 최근 미국과 유럽, 아시아의 경제회복 속도가 느려진 이유를 유가 탓으로 돌린다. 특히 미국의 2·4분기(4∼6월) 소비가 크게 줄어든 것은 유가 상승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일시적이며 유가가 정상 수준으로 되돌아간다면 세계 경제는 고성장을 다시 시작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이는 두 가지 이유에서 지나치게 낙관적인 시각이다.

첫째, 최근 내수와 산업활동 위축은 유가가 아닌 다른 원인들도 가세한 결과이다. 예를 들자면, 유럽에선 사회복지 정책의 축소와 불투명한 취업 전망으로 인해 가계의 신뢰지수가 악화하고 있고 일본에선 아직까지 소비자들이 돈을 쓰는 데 주저하고 있다.

둘째, 예전의 오일 쇼크가 공급자 쪽의 문제로 인한 것이라면 최근 유가 상승은 수요 증가로 인한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 수요가 급증한 중국 때문이다.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세계 경제는 좀 더 고유가에 시달려야 한다. 즉 세계 경제 회복이 석유시장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는 뜻이다.

이처럼 시장에선 불안한 분위기가 감도는데도 정책 입안자들은 경제가 성장하고 있다고 계속 말한다.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중앙은행으로선 장밋빛 시나리오를 내놓아야 정치적 압력을 피해 낮은 이자율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로선 민간 부문의 신뢰도를 살리기 위해 고성장을 강조해야 하는 입장이다.

유가가 추가로 올라도 이런 입장이 유지될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석유시장의 상황이 악화될 때 금융당국이 적절한 정책으로 대응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과거 오일 쇼크 때의 경험을 보면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가가 좀 더 상승할 경우 이자율 정책을 실시하는 데도 어려움이 따른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유가 상승의 위험은 잊어버려서도, 경시해서도 안 된다. 과거 전 세계적 불황이 모두 오일 쇼크로부터 촉발됐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장 클로드 슈라키 파리정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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