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물질들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먹을거리인가 싶지만 모두 옷을 만드는 소재로도 쓰인다. ‘참살이(웰빙)’ 열풍에 따라 의류 소재도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 소재가 웰빙을 결정한다
미국 듀폰사가 개발한 ‘쿨맥스’는 폴리에스테르의 단면을 미확인비행물체(UFO) 모양으로 가공해 만든 원사. 이 섬유는 땀 배출과 건조가 빨라 산악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최근에는 다양한 아웃도어 및 스포츠 의류에 적용되고 있다. 2002 한일 월드컵에 출전한 32개국 중 23개국 선수들이 쿨맥스로 만들어진 유니폼을 입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금오텍’은 쿨맥스 원사를 공급받아 원단을 만드는 업체. 쿨맥스에 항균기능을 추가한 ‘쿨라이트M’, 은을 넣어 체온 유지 기능을 추가한 ‘쿨라이트 실버’ 등의 원단을 자체 개발하기도 했으며 국내 최고의 기술력을 인정받는 업체 중 하나다.
서울 성동구 성수2가 골목의 허름한 공장건물 2, 3층에 자리 잡은 금오텍 본사. 이 회사에서 원단 개발을 책임지고 있는 서순택(徐淳澤·44) 이사는 1978년부터 26년째 섬유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원단 전문가이다.
서 이사의 연구실에 들어서니 여느 화학 실험실 못지않다.
세탁에 의한 원단의 손상을 실험하기 위한 세탁기와 건조기를 비롯해, 마찰 열 땀 등에 섬유가 얼마나 견딜 수 있는 지 시험하는 기계들로 가득 차 있다.
그는 이곳에서 세계 각국에서 온 샘플을 가지고 원단을 만들어보며 실험을 한다.
서 이사는 “원단의 진화는 어떤 원료를 이용한 원사가 개발되느냐에 달려있다”며 “세계적으로 어떤 원사가 개발되는지 예의주시하고 그에 따른 원단을 개발하지 못하면 금방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미국 ‘아웃도어 쇼’ 등 섬유 박람회를 빠지지 않고 쫓아다니며 원사의 개발 추이를 파악하는 것도 그의 주요 임무.
원사의 성능도 중요하지만 가격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아무리 성능이 좋다하더라도 티셔츠 1장이 수십만 원이라면 살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
엑스-스태틱(x-static)이라는 원사는 천연 은이 코팅돼 체온 유지 기능이 있다. 하지만 kg당 가격이 29만원이나 해 일반 폴리에스터(kg당 2400원대)의 100배가 넘는다. 서 이사는 “엑스-스태틱 같은 원사는 너무 비싸 100%는 못 쓰고 일부만 혼합해 쓴다”고 말했다.
금오텍은 최근 해조류에서 추출한 섬유 ‘시셀(SeaCell)’을 원료로 한 원단 개발을 완료했다. 시셀은 기존의 셀룰로오스 원료에 해조류 성분을 첨가해 생산된 것으로서 칼슘, 마그네슘 등의 각종 미네랄, 아미노산 비타민 등 건강 성분을 유지하고 있는 소재로 알려진 것.
서 이사는 “시셀은 해조의 영양과 기능을 섬유에 그대로 담아 혈액순환과 신진대사를 촉진하고 피부보호 보습효과까지 있다”며 “항균기능도 있어 란제리 등에 쓰여 웰빙 소재로 인기를 끌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 콩으로 속옷을 만들었다고?
좋은사람들은 2003년 상반기 녹차성분을 가공한 ‘녹차의 향기’에 이어 하반기에는 콩 성분을 넣은 ‘콩의 기적’을 내놓았다.
‘콩의 기적’에 쓰인 콩섬유는 대두에서 기름기를 제거한 잔여물에서 단백질을 추출해 일명 ‘습식방사(Wet Spinning)’ 방법으로 만들어진 것.
그러나 이 제품은 콩으로 만든 첫 의류라는 이유로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좋은사람들이 지난해 8월 TV 광고를 제작해 광고 허가를 신청했으나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가 “국내에 콩섬유가 소개된 적이 없고, 제조공법이나 효능에 대해 학술적으로 인정된 적이 없어 광고물의 방송을 허가할 수 없다”며 방송광고를 불허한 것.
이 회사는 관련 학계와 시험연구기관의 도움을 요청하였으나 모두 “자료가 없고 시험을 하려면 6개월의 연구기간이 필요하다”는 답변뿐이었다. 마지막으로 의뢰한 한국의류시험연구원(KATRI)에서 ‘대두섬유’에서 나오는 성분이 기존에 개발돼 있는 우유나 옥수수와 비슷한 단백질 섬유라는 것이 인증됐고 결국 광고 심의를 통과할 수 있었다.
○ 경계선 없는 소재 경쟁
남영L&F의 ‘비비안’은 최근 ‘후라보노 내의’를 내놓았다. 후라보노는 감 열매에서 추출한 효소로 냄새를 없애주는 기능이 탁월해 껌 원료로 익숙한 소재. 또한 이 회사의 ‘BBM’은 브래지어와 거들에 알로에 성분을 넣었다. 원단 위에 알로에 성분을 한 겹 덧입혀 만든 ‘알로에 원단’은 몸에 닿으면 피부 보습막을 형성해 준다고.
쌍방울은 ‘대나무 속옷’을 개발해 판매 중이다. 대나무섬유는 원사를 생산할 때 대나무에서 추출한 성분과 폴리에스테르, 레이온 등 일반 섬유를 섞어 실을 뽑아낸다. 항균 소취 효과를 가져 위생성이 뛰어나고 통풍이 잘되며 부드러운 촉감이 장점이다.
일본과 미국 등 섬유 선진국에서는 최근 모기가 싫어하는 향을 원사 속에 집어 넣어 옷을 만들어 입으면 자연스럽게 해충을 퇴치할 수 있는 섬유가 개발되기도 했다. 옷을 입은 사람의 체온이 올라가면 열을 흡수하고 내려가면 열을 방출해 체온을 알아서 유지해 주는 섬유도 이미 상용화되고 있다.
정재윤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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