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총수후보들의 경영수업]내공 다지고…현장 누비고…

  • 입력 2004년 10월 10일 18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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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호(辛格浩) 롯데그룹 회장의 차남인 신동빈(辛東彬) 부회장이 최근 그룹의 국내외 사업을 사실상 총괄하는 롯데호텔 정책본부장에 임명된 것을 계기로 대기업들이 후계구도 정리 작업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는 관측이 많다.

특히 금융계열사의 의결권을 줄여 경영권 대물림에 제한을 가하겠다는 정부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돼 있어 ‘차세대 오너’들의 움직임에 대한 관심도 높다.

다만 일찌감치 후계구도가 확정돼 대외적으로도 공개된 롯데와는 달리 상당수 다른 대기업 총수 가문의 ‘차세대 주자’는 아직까지는 경영 수업에 힘을 쏟고 있는 단계. 대표이사 등을 맡고 있지 않은 30대 차기 총수 후보들의 최근 근황을 소개한다.

▽내실 다지기에 전력=총수 가문 차세대 가운데 가장 주목을 끄는 인물은 이건희(李健熙) 삼성그룹 회장의 외아들인 이재용(李在鎔·36) 삼성전자 상무. 편법 증여 문제로 한때 곤욕을 치렀지만 최근 잇단 대법원 판결로 법적 문제가 해결됐다.

대법원은 6월 삼성전자가 발행한 전환사채(CB)를 이 상무가 인수한 게 전혀 문제될 게 없다고 판결했다. 또 지난달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삼성SDS에 대해 이 상무를 부당지원한 혐의로 부과한 과징금에 대해서도 취소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재계에서는 이 상무의 경영권 승계 작업에서 최대 걸림돌 중 하나가 해소된 만큼 차기 총수를 향한 발걸음이 한층 가벼워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이 상무는 최근 그룹 현안을 조율하는 주요 임원급 회의에도 꼬박꼬박 출석할 뿐 아니라 삼성전자와 소니의 합작사인 S-LCD 등기이사에도 선임됐다.

두산그룹의 창업주 4세들도 착실하게 경영수업을 받는 ‘모범생’으로 꼽힌다.

현재 사장이 아니면서 그룹의 임원으로 있는 4세는 △박용곤(朴容昆) 두산 명예회장의 차남인 박지원(朴知原·39) 두산중공업 부사장 △박용성(朴容晟)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의 장남인 박진원(朴신原·36) 두산 전략기획본부 상무 △박용오(朴容旿) 두산 회장의 차남인 박중원(朴仲原·36) 두산산업개발 상무 △박용현(朴容현) 전 서울대병원장의 장남인 박태원(朴兌原·35) 네오플럭스캐피탈 상무 등이다.

이들은 모두 연세대를 졸업한 뒤 미국 뉴욕대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땄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또 박지원 부사장을 제외한 3명은 올해 들어 부장에서 임원급(상무)으로 일제히 승진했다. 박 부사장은 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두산중공업을 맡아 사업 전반을 관리하고 있다. 박진원 상무는 구조조정 등 그룹의 장기 비전을 만드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신세계 이명희(李明熙) 회장의 외아들인 정용진(鄭溶鎭·36) 부사장은 간부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아이디어를 내놓으며 자기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케이스.

구학서(具學書) 신세계 사장은 “정 부사장은 능력이 충분한데도 아직까지는 자신의 역할을 최고경영자(CEO)보다는 대주주에 맞추고 있다”며 “하지만 신규 점포를 일일이 방문해 새 소비 트렌드를 제안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공격형 리더’ 모색=적극적인 사업 개척을 통해 강인한 인상을 심고 있는 차세대 총수 후보도 적지 않다.

정몽구(鄭夢九)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의 외아들인 정의선(鄭義宣·34) 기아차 부사장은 최근 슬로바키아 정부와 현지 공장 설립 문제를 확정짓고 돌아왔다. 토지 소유주들의 반발로 용지 매입에 차질을 빚자 직접 슬로바키아로 가서 총리와 부총리를 만나 해결 방안을 합의한 것. 그는 또 올해 추석 연휴에는 경기 화성시 기아차 공장을 방문해 특근 근무조를 격려하는 등 리더로서의 자질을 보여주기도 했다.

최근 공격적인 사업 확장에 나서고 있는 효성 조석래(趙錫來) 회장의 아들 3형제도 활발한 경영 활동을 하고 있다.

장남인 조현준(趙顯俊·37) 부사장은 효성의 경영혁신 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미국 변호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차남 조현문(趙顯文·36) 전무는 기업 인수합병과 관련한 법적 문제를, 조현상(趙顯相·33) 상무는 다국적 컨설팅회사인 베인앤컴퍼니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 구조조정과 선진형 인사시스템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효성 관계자는 “3형제가 아직은 공식적으로 경영의 전면에 나서지는 않고 있지만 나름대로 각 분야의 전문가로서 임원회의 등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며 “형제간 우애가 깊어 자주 서로 조언을 하는 모임을 갖는다”고 말했다.

중견기업 중에서는 일진그룹 허진규(許鎭奎) 회장의 장남인 허정석(許政錫·35) 일진전기 상무가 주목받는 2세 경영인으로 거론된다.

그는 일진전기가 새로 진출하는 경유차량용 매연저감장치(DPF) 개발을 맡고 있다. 최근 허 회장에 이어 일진전기의 2대 주주로 부상(浮上)하며 탄탄한 승계구도를 다지고 있다.

고기정기자 koh@donga.com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하임숙기자 arte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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