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분석]이건희회장 新경영 11년… 삼성의 영광과 고민

  • 입력 2004년 10월 14일 18시 07분


이건희 회장
이건희 회장
《삼성그룹 전체 계열사가 지난해 한국의 수출에서 차지한 비중은 20%. 한국 수출품의 5분의 1은 ‘삼성’ 브랜드가 붙은 제품이었다. 또 이 그룹 63개 계열사가 지난해 올린 매출은 121조원. 올해 한국의 연간 예산 120조1393억원(추가경정예산 포함)을 넘는다. 이건희(李健熙) 회장이 ‘신(新)경영’을 선언한 지 11년째를 맞은 삼성그룹의 위상은 이처럼 당당하다. 한국경제가 전반적으로 추락하는 상황이어서 더 돋보인다.

이처럼 명실상부한 ‘한국의 대표기업’ 삼성이 요즘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다. 국회에 계류 중인 공정거래법이 통과될 경우 경영권이 위협받을 수도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또 국내 기업 중 ‘부동의 1위’라는 위치가 굳어지면서 ‘자부심’이 자칫 ‘오만’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신(新)경영’ 11년의 성과=삼성그룹 임직원들은 10여년 만에 세계적 기업으로 올라설 수 있었던 계기를 1993년 이 회장의 ‘신경영 선언’을 꼽는다.

“마누라와 자식을 제외하고 모두 바꾸라”는 말로 압축된 이 회장의 선언 이후 삼성은 ‘양(量)의 경영’에서 ‘질(質)의 경영’으로 획기적으로 전환했다.

90년대 중반까지 단 1개도 없던 세계 시장점유율 1위 제품은 D램 반도체, 낸드플래시메모리, 초박막트랜지스터액정표시장치(TFT-LCD),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방식 휴대전화 등 현재 18개로 늘었다.

브랜드 가치도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세계적 브랜드 컨설팅업체인 인터브랜드에 따르면 그룹 주력사인 삼성전자의 올해 브랜드 가치는 세계 21위, 125억5300만달러로 일본의 소니(127억5900만달러·20위)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한국 수출품의 고질적 한계로 지적돼 온 디자인에도 획기적 변화가 있었다. 일본 경제주간지 ‘닛케이 비즈니스’는 최근 “삼성의 대형 TV가 미국 시장에서 일본 제품보다 더 비싸게 팔리는 등 50년간 누려온 일본 기업의 브랜드 우위가 위협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경영권 위협 느끼는 삼성=삼성그룹은 현대 대우 등 경쟁그룹에 비해 상대적으로 ‘상처’ 없이 외환위기를 극복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삼성은 최근 ‘경영권 위기’라는 새로운 위협을 호소하고 있다.

11월 국회에서 처리될 예정인 정부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이 회장의 외아들인 이재용(李在鎔) 상무 등 특수 관계인과 삼성생명 등 금융계열사가 갖고 있는 지분을 합한 삼성전자에 대한 의결권이 2008년까지 15%로 대폭 축소되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당시 4만원 정도였던 주가는 현재 10배 이상 올라 쉽게 오너 일가의 지분을 늘리기도 어렵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양금승(梁金承) 기업정책팀장은 “외국인 지분이 60% 정도인 삼성전자에 대한 금융계열사 의결권이 축소되면 머지않은 미래에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가 있을 수 있으며 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소유 구조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삼성을 위협하는 새로운 도전들=‘우리는 1등’이라는 삼성그룹의 자부심이 지나치면 오히려 삼성의 이미지를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한 대기업 임원은 “삼성은 세계적 기업이면서도 국내 기업간 경쟁에서 지나친 ‘자존심 싸움’을 벌이는가 하면 각 분야에서 과도한 장악력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그룹 전체에서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크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게다가 삼성전자의 사업도 D램 반도체, TFT-LCD 등 경기 진폭이 큰 제품이 적지 않아 그룹 전체의 실적이 특정 산업의 경기변화에 따라 크게 흔들릴 수 있다.

이와 함께 일사불란함을 강조하는 삼성의 기업문화가 ‘창의성’이 중시되는 미래의 경쟁에 다소 부적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

▼삼성을 이끄는 사람들 11인 구조조정위, 그룹 항로 조율▼

삼성그룹의 의사결정 과정의 정점엔 이건희(李健熙) 그룹 회장이 있다.

하지만 이 회장이 그룹 내 모든 의사결정을 혼자 내리는 것은 아니다. 구조조정본부를 중심으로 각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상호 견제와 균형을 통해 그룹을 이끌고 있다는 게 그룹측 설명이다.

이를 위해 삼성은 그룹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구조조정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구조조정위는 그룹의 신규사업 진출과 투자, 구조조정 전략 등을 조율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삼성의 핵심 경영인이라고 할 수 있는 구조조정위 멤버는 모두 11명.

이학수(李鶴洙·부회장) 구조조정본부장을 비롯해 윤종용(尹鍾龍) 삼성전자 부회장, 이윤우(李潤雨) 삼성전자 대외협력담당 부회장 등 부회장이 세 명이다. 또 배정충(裵正忠) 삼성생명 사장, 이상대(李相大) 삼성물산 사장, 황창규(黃昌圭)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겸 메모리사업부 사장, 최도석(崔道錫) 삼성전자 경영지원총괄 사장, 이수창(李水彰) 삼성화재 사장, 유석렬(柳錫烈) 삼성카드 사장, 김징완(金澄完) 삼성중공업 사장, 김인주(金仁宙) 구조조정본부 사장 등 8명의 사장도 들어 있다.

구조조정위원장은 지난해까지 윤 부회장이 맡다가 올해 초부터 이 회장을 최측근에서 보좌하는 이 본부장이 겸직하고 있다.

이 본부장은 구조조정위 회의에서 도출된 결과를 이 회장에게 직접 보고한다. 또 매주 수요일 오전 8시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본관 27층 회의실에서 그룹의 전 계열사 CEO들이 참석하는 ‘수요회’를 주재하고 그룹의 현안을 설명한다.

서울대 전자공학과 선후배 사이인 삼성전자 윤종용, 이윤우 부회장의 비중도 크다.

삼성전자의 경영 전체를 총괄하는 윤 부회장은 고(故) 이병철(李秉喆) 창업주 때부터 TV, VCR 등 전자산업 현장을 지켰다. 지금도 이 회장의 뜻을 잘 읽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윤 부회장의 3년 후배인 이 부회장은 28년간 삼성 반도체 역사와 함께한 ‘토종 엔지니어 CEO’의 대표 주자다.


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

▼효율적 ‘그룹 시스템’ 구축 경영권 안정 더 힘쏟을때▼

삼성그룹은 국내 기업으로는 드물게 품질경영과 투명경영, 성과주의가 완전히 자리 잡은 기업이다. 게다가 중요한 결정을 총수 한 사람이 빠르게 결정할 수 있는 ‘재벌구조’ 특유의 순발력이 글로벌 경쟁에서 삼성의 경쟁력을 더욱 강화해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 같은 ‘효율적 지배구조’가 오히려 짐으로 작용하고 있다. 외국인 지분이 60% 가까이 되는 삼성전자 등의 계열사는 외국인들이 힘을 합쳐 언제든지 경영 시스템의 변화를 요구할 수 있는 상황이다.

삼성전자의 지배 구조가 취약해진 것은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주가가 너무 높은 수준으로 올랐기 때문이다. 경영권을 유지하기 위해 충분한 지분을 갖추려면 수십조원이 들지만 대주주가 그런 거금을 투입하기는 어렵다.

주주들은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sustainable growth)’를 기대한다. 이 때문에 삼성그룹의 지배구조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상황 자체가 ‘지배구조 디스카운트’로 작용하게 된다.

삼성그룹은 북유럽식의 ‘차등 의결권’ 제도 등의 방법이 한국에도 도입돼 안정된 경영을 할 수 있길 바라겠지만 이는 글로벌 스탠더드로 보기는 어렵다.

정부가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변화를 ‘강제’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삼성그룹은 스스로 경영권을 더욱 안정화하고 투명화하면서도 효율성을 유지할 수 있는 그룹 시스템을 창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선우석호 홍익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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