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기온이 5도 안팎까지 떨어져 갑자기 추워진 13일 밤 서울역 대합실.
양복차림에 불룩한 배낭이나 스포츠용 가방을 어색하게 멘 사람들이 군데군데 서성이고 있었다. 자판기 앞을 서성이던 전상철씨(30·가명)는 “6월부터 역 주변에서 일자리를 찾으며 생활해 왔지만 일자리는 이미 포기했고 어떻게 추위를 피할지가 고민거리”라며 “주위에 신세는 지기 싫고 능력은 없으니 장기노숙자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영등포구의 ‘드롭인 센터’에서 생활하는 박성호씨(35·가명)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월 15만원을 내는 노량진역 영등포역 일대의 고시원에서 생활했으나 돈이 떨어지면서 거리로 나왔다.
박씨는 “처음에는 일자리를 구하려고 노력도 많이 했지만 그저 먹고 사는 게 문제라면 일 하지 않고도 그럭저럭 지낼 만하다”고 말했다.
장기노숙자가 늘면서 이들처럼 젊은층이 이에 가세하는 선진국형 노숙형태가 고착되고 있다.
서울역 영등포역 등에서 상담을 해주는 ‘노숙인 다시서기 지원센터’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시내 노숙자는 734명. 지난해 6월 처음으로 500명 선을 넘은 뒤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이들 중 25%가량이 20, 30대 젊은 실직자들로 추정되지만 이들이 PC방 만화방 등을 전전해 정확한 집계도 안 되고 계도에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협의회 조성준 간사는 “지난해부터 10대 이하 자녀를 동반한 가족형 노숙자나 젊은 노숙자들이 늘고 있는데 별도의 시설이나 지원이 미비해 이들이 거리로 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덕성여대 사회복지학과 황운성 교수는 “한국 경제가 첨단산업 위주로 환경이 바뀌면서 단순노무직 등 1차 산업에나 투입될 수 있는 노숙자들에겐 경기호황도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노숙자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지 않고 젊은층이 증가하는 것은 선진국처럼 장기노숙자 시대가 시작된 증거로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김재영기자 jaykim@donga.com
정세진기자 mint4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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