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뽑은 사원이 ‘궂은 일’을 묵묵히 견뎌낼 수 있는지 시험하기 위해서다.
이 회사 인사교육팀장은 “중소기업은 아무래도 급여나 복지 수준이 대기업에 못 미칠 수밖에 없다”며 “대접만 바라고 들어온 신입사원은 테스트 기간에 대체로 회사를 떠난다”고 말했다. 학벌이 좋고 외국어 등 특정 분야의 능력이 뛰어난데도 중소기업 취업에 실패한 경험이 있다면 자신이 ‘중소기업 인재 상(像)’에 맞는지 곰곰이 따져볼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이 원하는 인재는 실력과 학벌, 전문성을 우선시하는 기업과 적지않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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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합’이 최고=중소기업은 대체로 개인의 능력보다는 팀 화합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어도 조직과 융화하기 어려운 구직자는 채용하지 않을뿐더러, 뽑았다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퇴출 1순위로 꼽는다.
티슈와 기저귀 등을 생산하는 종이 제조업체 D사는 동료애를 경영이념의 제1원칙으로 삼고, 구성원들과 화합할 수 있는 사람을 우선적으로 채용하고 있다.
금융전문기업 A사와 유리 제품 생산업체 K사도 동료와의 화합을 중시하는 사람을 선호하고 있다.
네트워크장비 제조업체 I사는 드러내며 일하는 사람보다 자신이 할일을 묵묵히 소신껏 해 나가는 인재를 중시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중소기업에서 팀워크를 중시하는 이유는 규모가 크지 않은 만큼 한두 명의 ‘튀는’ 직원이 다른 직원의 사기를 저하하고 조직 전체의 분위기를 흐트러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배우는 자세로=학벌이나 학력, 성적 등 이력서보다 입사 후 업무에 임하는 자세와 태도를 중시하는 것도 중소기업만의 특징이다.
페인트 제조업체 S사 인사담당자는 “배울 자세가 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능력만 뛰어날 경우 조직구성원들과 불협화음을 이루기 쉽다”며 “면접 때 성실성, 성품, 의욕을 많이 보고 있다”고 말했다.
무선기기 및 측량기구 제조업체 B사 인사담당자는 “학력과 학벌보다는 노력파를 선호한다”며 “자신의 영역만을 고집하고 타인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는 독불장군은 사양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외국어에 주눅 들었던 구직자에게 좋은 소식도 있다. 많은 중소기업 인사담당자들은 무역이나 해외영업 등 외국어를 주로 쓰는 직무가 아니라면 외국어 실력은 당락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고락을 함께해야=중소기업 인사담당자들은 종종 학력이 좋고 능력이 뛰어난 고급 인재들을 스스로 거부할 때가 있다고 토로한다. 일시적으로 경영이 어려워졌을 때 고급 인재들이 퇴사하거나, 고액의 연봉을 제시하는 업체로 옮겨가는 것을 경험한 적이 많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이 채용 때 애사심을 중시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전자기기 및 통신기기 제조업체 W사는 ‘중소기업을 이해하고 중소기업에서 일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갖춘 사람’을 첫 번째 인재상으로 꼽고 있다.
화학섬유 제조업체 J사 인사담당자는 “중소기업의 현실을 인정하고 고락을 함께할 수 있으며, 급여보다 일의 가치에 매력을 느끼는 인재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멀티플레이어가 돼라=중소기업은 채용 후 6개월에서 1년 간 실무교육을 받는 대기업과 달리 당장 실무에 투입돼 업무를 소화해야 한다. 이 때문에 업무와 관련된 다양한 경험을 쌓은 사람을 우선 채용한다.
학창시절 관련 분야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거나 인턴 등을 통해 실무경험을 쌓았다면 채용 때 유리하다.
외장재, 바닥재 등 건축자재를 생산하고 있는 C사 인사담당자는 “학교성적은 좋지 않더라도 아르바이트나 인턴십 등 다양한 사회경험을 쌓은 경우 채용 때 가산점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또 환경변화에 빠르게 적응해야 하는 중소기업의 특성상 한 가지 업무만을 고집하기보다는 전반적인 업무에 능하거나, 맡겨진 업무에 능하지 않더라도 이를 수긍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인기가 높다.
대구의 유통업체 D사 인사담당자는 “학점이 좋은 사람보다 학과 생활에 적극적이었고 봉사활동, 동아리활동 등 다양한 경험을 쌓으려 노력했던 구직자를 선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취업 전문업체인 스카우트(www.scout.co.kr) 김현섭(金賢燮) 사장은 “중소기업 인사담당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구직자는 중소기업을 다른 기업으로 가는 거점이라고만 생각하는 구직자”라며 “자신이 중소기업에 알맞은 인재인지를 판단해 신중하게 지원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
▼다양한 경험 쌓은 황수환씨 “아르바이트하며 실무 익혔죠”▼
“사람을 못 구해 쩔쩔매는 중소기업이 많습니다. 눈높이를 조금만 낮추면 좋은 일자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황수환(黃壽煥·26·사진)씨는 지난달 중소기업 ‘고을인더스트리’에 입사했다. 고을인더스트리는 경기 과천시 서울랜드를 운영하는 한덕개발의 자회사로 서울랜드의 놀이기구를 관리한다. 올 2월 부산 동아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황씨는 이곳 놀이기구 전기시설의 점검과 수리 보수를 책임지고 있다.
황씨는 “중소기업을 노리더라도 대학 저학년 때부터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의 대학생활도 취업을 위한 실력과 경험을 쌓기 위한 훈련장이었다.
“대학 1, 2학년 때는 식당 서빙 등 서비스 업종에서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어요. 전공 지식이 어느 정도 쌓인 3학년부터는 전기 관련 일들을 찾아다녔습니다.”
시력 때문에 군대를 면제받은 황씨는 남들보다 더 주어진 시간을 일자리 찾기에 쏟았다. 2002년에는 휴학하고 롯데백화점 잠실점에서 1년 동안 전기담당 계약직 직원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현장에서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실력을 쌓기 위한 노력을 그치지 않았다. 졸업반이었던 지난해에는 산업자원부가 부산지역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주최한 ‘두뇌한국(BK) 21 대학생 전기전자 작품 발표회’에서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황씨는 다른 전기회사도 여러 군데 합격했지만 답답한 공장보다는 활기찬 놀이동산을 택했다고. 연봉은 약 2200만원.
그는 “중소기업도 겉모습만 보지 말고 그 회사가 어떤 인재를 원하는지 분석하고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재윤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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