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리더십]엔지니어 출신 3人 “기술이 리더십”

  • 입력 2004년 10월 26일 16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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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 - “잘나갈때가 가장 위험한때”▼

“가장 잘 나갈 때가 가장 위험하고 그때 더욱 조심해야 한다. 모든 것이 급변하는 디지털 시대에 경영자는 내일 망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한국이 외환위기의 폭풍전야에 감싸였던 1997년 1월 삼성전자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한 후 7년 넘게 회사를 이끌어온 윤종용 부회장이 항상 강조하는 내용이다.

윤 부회장은 삼성전자를 저가의 백색가전 제조업체에서 반도체와 휴대전화, 액정화면(LCD) 부문의 세계 최첨단 기업으로 변모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항상 위기의식을 강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최근 몇 년 동안 삼성전자가 최고의 실적을 내며 글로벌기업으로 도약하는 데 성공했지만 결코 자만해서는 안된다는 것.

윤 부회장이 CEO로 취임할 당시 주변에서는 서열에 따라 승진한 사람이기 때문에 구조조정이 절실히 필요했던 1997년 상황에는 잘 맞지 않는다는 평가가 있었다.

삼성전자는 1995년 창사 이래 최대 수익을 내며 근무기강이 느슨해졌고 방만한 해외진출과 과잉투자, 과다한 경비사용 등의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윤 부회장은 ‘회사가 망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고 과감한 수술에 들어갔다.

전체 직원 8만3000명 가운데 2만3000명(28%)을 줄였고 비용구조조정에 착수해 경영에 꼭 필요하지 않은 비용을 연간 1조5000억원씩 줄여나갔다. 또 120여개에 이르는 사업의 철수 및 분사 등으로 한계사업과 비주력사업을 정리했으며 부동산 등 무수익 자산을 매각해 1조2000억원의 현금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모든 회사들이 외환위기를 이유로 연구개발(R&D) 인력 및 비용을 줄일 때 삼성전자는 핵심기술 확보를 위해 반대방향으로 가면서 오히려 투자를 늘렸다.

그는 자신을 ‘혼란제조기(Chaos-maker)’라고 말하며 위기의식을 새로운 도약을 위한 동력으로 삼고자 했다.

이제 삼성전자는 윤 부회장의 리더십 아래 비용절감과 미래투자에 집중한 결과 세계 최대 반도체업체로 급부상했고 휴대전화는 세계 2위 탈환을 눈앞에 두고 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10월 “지난 4∼5년간 삼성전자의 기본전략은 실적이 좋아도 끊임없이 긴장감을 유지한 것”이라며 “자만하지 않고 어떠한 경기침체 상황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규모와 효율성을 갖추기 위해 투자해왔다”고 소개했다.

윤 부회장은 “일찍 일어난 새를 따라 잡기 위해서는 원천 기술을 가장 빨리 상용화시킬 수 있어야 했다”며 “삼성전자를 디지털 시대의 최전선에 설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은 속도”라고 말했다.

윤 부회장의 인재상은 특이하다. 그는 “아날로그 시대의 인재는 성실하고 말 잘 듣고 부지런한 사람이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의 인재는 창의력과 스피드를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LG전자 김쌍수 부회장 - 현장서 진두지휘 “혁신 또 혁신”▼

LG전자 김쌍수 부회장은 누구보다 현장을 강조한다. 책상에 앉아서 머리만 굴리기 보다는 생산과 판매현장에서 어떻게 하면 생산성을 높이고 마케팅을 잘 할지를 고민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

현장상황을 파악함으로써 빠르고 정확한 의사결정이 가능하고 해외법인 등에서 현장직원들과의 만남을 통해 사기를 북돋울 수 있다는 점도 꼽는다.

그는 1년전 최고경영자(CEO)에 취임한 후에도 ‘현장 70%, 사내 30% 근무’의 현장경영 원칙을 지켰다. 이는 1969년 LG전자에 입사해 냉장고 공장장, 리빙시스템 사업본부장, 디지털어플라이언스(DA) 사업본부장 등을 지내며 35년 동안 백색가전 사업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경험에서 나온 것.

김 부회장은 끊임없는 혁신을 모토로 삼는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6시그마를 도입해 생산현장의 혁신활동을 주도하며 LG전자 특유의 ‘TDR(Tear Down & Redesign)’를 창안했다.

1980년대 말 창원 공장장 시절에 극심한 노사분규로 회사가 커다란 위기를 맞자 ‘노경(勞經)의 화합과 안정이 경영의 핵심과제’라고 판단했다. 그는 아침에 출근하는 노조원에게 인사하는 것부터 시작해 노조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두 번째 위기는 1997년 말 외환위기를 맞아 ‘백색가전은 사업전망이 불투명하기 때문에 포기해야 한다’는 외부의견이 나왔을 때다.

하지만 그는 ‘사람이 생활하기 위해서는 가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믿음을 갖고 원가절감과 프리미엄급 제품 개발에 더욱 매진했다. 김 부회장은 가전사업을 세계 최고수준으로 끌어올리며 이익을 내는 부서로 변화시켜 외부 평가기관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김 부회장은 평소 ‘자기에게 주어진 길, 앞만 보고 우직하게 한 길만 보고 열심히 가는 사람’이라는 ‘Right People’ 인재론을 강조한다.

그는 CEO의 자질을 예측력이라고 단언한다. 평소 준비하고 연구하는 자만이 발휘할 수 있는 예측력을 통해 항상 한발 앞서 나간다는 생각이다.

미국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2003년 6월 “LG전자는 아시아에서 가장 효율적인 생산시설을 운영하는 회사”라고 평가하며 김 부회장을 ‘아시아의 스타’(The Star of Asia)로 선정했다.

시사주간지 타임도 6월 “최근 수년간 소니를 비롯한 전자업체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LG전자는 지난해 매출 18%, 순이익 33% 성장을 달성했다”며 “이는 김 부회장의 현장경영과 최첨단 기술력 및 디자인, 글로벌 마케팅 전략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의 꿈은 회사를 ‘GCGP(Great Company Great People)’로 만들며 세계 3위 전자기업으로 도약하는 것. 오늘도 그 목표를 위해 현장을 누빈다.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포스코 이구택 회장 - “한발 한발 正道 지키자”▼

포스코가 올해 3·4분기(7∼9월) 1조120억원의 순이익을 올려 분기 순이익 1조원 시대를 연 배경에는 최고경영자(CEO)인 이구택 회장의 리더십이 자리잡고 있다.

2003년 포스코 회장에 오른 이 회장은 엔지니어 출신이면서도 경영 정책과 판매 분야에서 더 많이 근무해 기술과 전략을 겸비한 경영자로 통한다. 영어에 능통할 뿐 아니라 국제적인 감각도 갖춰 외국인 투자가들로부터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다.

이 회장의 경영 철학은 ‘정도경영’으로 요약된다.

그는 아무리 어려워도 지킬 것은 지키는 정도경영이야말로 포스코 기업문화의 근간이라고 틈만 나면 강조한다. 글로벌 경영의 기본은 고객을 최우선으로 여기면서 지속적으로 기업 가치를 높이는 데 있다는 소신이다.

포스코는 이에 따라 올해 8월 액면가의 20%를 중간배당해 816억원을 주주들에게 돌려줬다. 7월에는 전체 발행주식의 2%에 해당하는 2400억원 상당의 자사주를 소각해 주식의 실질가치를 높였다.

이 회장은 윤리경영 실천에도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 그는 “아무리 유능해도 신변을 깨끗이 못하는 사람과는 같이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포스코 임직원들은 이에 따라 사원증 뒷면에 새겨진 ‘윤리경영 자가 진단 항목’을 보며 스스로를 점검한다. 유관 업체들과 선물 안 주고 안 받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1990년 이후 사회 공헌에 기여한 금액도 1조원을 넘겼다.

이 회장은 경영전략의 무게 중심을 성장력 강화에 두고 있다. 최근 중국 장쑤(江蘇)성 쑤저우(蘇州)에 연간 20만t 규모의 자동차강판 복합가공센터를 준공하는 등 중국을 비롯한 해외시장 진출도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내년에 상용화 예정인 파이넥스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 확보를 위한 과감한 투자의 결실로 평가받고 있다. 파이넥스 공법은 기존의 용광로를 대체해 연료비가 적게 들고 환경오염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 회장은 최근 임원들에게 “보고서는 절대로 두 장을 넘기지 말라”는 주문을 내렸다.업무의 비효율성을 줄여 기술 개발과 혁신에 회사의 역량을 집중하자는 취지다.

그는 “일하는 방식을 바꿔 모든 자원을 회사의 미래가 걸린 기술개발과 혁신활동에 투입하겠다”고 강조했다.

김태한기자 freewi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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