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조동근]외국자본에 안방 내줄수야

  • 입력 2004년 10월 27일 18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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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의 2대 주주인 소버린자산운용이 정관 개정을 위한 임시주주총회 개최를 요구함으로써 경영권을 둘러싼 소버린과 SK㈜간의 분쟁이 재연되고 있다. 이는 이미 예고된 것이다. 소버린은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패한 뒤 ‘공개서한’을 통해 최태원 회장의 자격 문제를 제기했다. 후일을 기약하겠다는 여운을 남긴 것이다.

▼경영권 방어 ‘발등의 불’▼

소버린의 요구는 ‘이사 자격’ 관련 2개 조항을 정관에 반영해 달라는 것이다.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을 수 있는 형사 혐의로 기소된 이사는 선고 때까지 직무수행을 정지하고, 형이 확정되면 이사직을 상실케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소버린은 “SK㈜의 확실한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해서는 최 회장이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번 주총 개최 요구는 분식회계 혐의로 기소돼 있는 최 회장을 겨냥한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상황만 보면, 소버린이 임시주총 개최 요구라는 분란을 일으킬 이유는 없다. 그동안 SK㈜는 사외이사 비율을 70%로 높이는 등 GE에 필적할 만한 이사회 운영을 통해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여 왔고, 올해 상반기 순이익이 7018억원에 이르는 등 경영실적이 크게 개선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버린이 정관 개정을 위해 필요한 출석 주주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기가 쉽지는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소버린의 숨은 의도는 무엇인가. 연말 결산을 앞두고 투자자 관리 차원에서 장부상 평가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주가를 최대한 끌어올리려는 전략이 아니었나 하는 추측이 가능하다. 결국 소버린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보도(寶刀)를 다시 빼든 것이다. 이미 증시 동향은 소버린의 의도대로 움직이고 있고, 소버린은 투자이익을 차곡차곡 쌓고 있다. 하지만 소버린을 탓할 것은 없다. 외국계 투자자본은 원래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소버린의 ‘상투적인’ 지배구조 개선 요구는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 지배구조 개선은 오너에 대한 견제, 소수 주권의 신장 등을 의미한다. 오너 퇴진이 지배구조 개선일 수는 없다. 더욱이 ‘이사회 중심 경영’이 실행되고 있는 이상 오너 퇴진 요구는 설득력이 없다. 앞으로도 소버린은 SK텔레콤까지 건드릴 수 있는 14.9%라는 절묘한 지분을 지렛대로 파상공격을 펼칠 것이 예상된다. 외국인 지분이 60%를 넘어섰고 우호지분이 여의치 못한 상황에서 SK㈜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어는 최선의 경영일 뿐이다. 투명경영과 주주중심 경영을 통해 투자자에게 다가서야 한다.

소버린은 SK㈜가 거듭나는 데 일조한 ‘선의’의 견제세력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간단치 않다. 재벌 체제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외국 자본의 힘을 빌린다고 안방을 내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적대적 인수합병 허용의 기본 취지는 시장 규율을 통해 오너의 경영을 감시하자는 것이지, 오너를 적대적 인수합병에 무력하게 ‘노출’시키는 것은 아니다. SK㈜가 의표를 찔린 것도 출자규제를 우회하기 위한 ‘주식 맞교환’이 무위로 돌아가면서 최 회장과 SK㈜간의 취약한 연결고리가 소버린에 ‘급소’로 비쳤기 때문이다.

▼역차별적 출자규제가 문제▼

우리 주력기업의 지배권은 규제당국이 생각하는 것처럼 난공불락의 ‘철옹성’이 아니다. 적대적 인수합병 시도가 부실기업에 국한될 것이라는 기대도 순진한 발상이다. 우량기업일수록 공격 대상이 될 개연성이 높으며, 국내 기업에 역차별적인 출자규제와 금융계열사 의결권 제한은 기업사냥꾼에게 최적의 조건을 제공한다.

이제 외국 자본의 힘을 빌린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한다. 재벌 규율은 우리의 몫이며, 더 이상 외국 자본에 ‘대박’을 제공할 필요는 없다. 외국 자본에 빼앗긴 경영권은 되찾기 어려우며, 국익보다 앞서는 것은 없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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