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경우를 보자. 1960년대 이후 우리 농업은 국가경제가 선진국을 바라볼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해 왔지만 최근에는 일방적으로 지원만 요구하는 미운 오리새끼가 되어 있다.
농업농촌기본법 제2조에는 ‘농업은 국민의 식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국토환경보전에 이바지하는 등 경제적 공익적 기능을 수행하는 기간산업으로서…’라고 기술돼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농정은 식량증산 내지는 농민대책, 농촌대책 등등 용어만 바꾸어 대동소이한 하드웨어 위주의 정책으로 일관해 왔다.
쌀 시장 개방 협상을 둘러싸고 논란이 많다. 농정에 관련된 사람들 모두가 쌀 개방 협상 문제를 경제적 측면에서만 풀려고 주장들을 펴고 있다. 말로는 농민소득을 도시민 수준으로 끌어올려 농촌을 살 만한 곳으로 만드는 것이 농촌대책이라면서 관세화 유예가 유리하다느니, 의무수입량이 몇 % 이상이면 오히려 관세화가 낫다느니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국가가 농업의 역할을 올바르게 국민에게 인식시키고 농업을 살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될 때가 되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농업이 국가경제 발전에 어려움을 가중시킨다고 국가가 농업을 버려서는 그 나라가 올바로 설 수가 없다. 타 산업이 잘 되려면 국가적으로 농업을 안정시키기 위한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농업의 역할이 안정적 식량 공급에 있다면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국방과 외교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식량안보도 전략적 차원에서 고려해야 한다. 국토환경보호와 동식물자원 유지 등에 관련한 비식량적 농업의 역할을 고려한다면 이제는 장기적이고 대국적인 안목에서 농업을 살릴 전략을 짤 때다.
인구의 80% 이상이 농민이었을 때는 누구나 농촌을 마음의 고향으로 생각했고 농업은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이었다. 이제 인구의 8%가 농민이고 농촌에서 자란 사람의 수는 점점 줄어들어 많은 사람이 농업에 대해 잘 모른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정부는 쌀 시장 개방을 반대하는 농민들의 문제를 과거와는 다른 방향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국민의 혈세를 일방적으로 지원해 달라는 농민들의 감정적인 주장이 공감을 얻기 힘들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이는 역사적으로 정부나 정치권이 조장한 것이나 다름없다. 또한 농민이 줄 것은 주고 요구할 것은 요구하며 스스로 살아가기 위한 노력을 보이지 못하는 것도 이제껏 정부의 농정이 소프트웨어는 무시하고 하드웨어에만 집착해 온 데에 따른 결과다.
세계적인 농업 선진국들의 역사를 보면 농업 발전은 농민교육에서부터 시작됐다. 그런데도 일방적인 퍼붓기식 농정으로 일관하는 정부를 보면 답답하기 짝이 없다. 어차피 개방화의 물결을 거스를 수 없다면 과거를 답습하는 농정보다는 당장은 힘들더라도 시간을 갖고 농민이 자립할 수 있는 정신 자세부터 가꾸어 줘야 앞으로 10년 후에 지금과 동일한 상황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이무하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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