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의 상식으로는 시가 총액 63조원의 삼성전자를 M&A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이지만 ‘충분히 가능하다’는 게 M&A 세계의 상식이다. 우량기업에 대한 적대적 M&A는 1980년대 미국에서 붐까지 일었던 매력적인 머니게임이다. 칼 아이칸이라는 기업사냥꾼은 US항공을 인수하는 등 인수합병을 통해 큰 이득을 챙겨 현재 보보스 선정 세계 50대 갑부 명단에 올라 있다. 이제 다양한 M&A 방어 장치들이 도입돼 미국에선 적대적 M&A가 크게 줄었지만 보유현금이 많고 기업가치가 큰, 그러면서도 의결권마저 묶여 있는 삼성전자야말로 탐나는 사냥감이 아닐 수 없다.
▼정부, 기업사냥꾼 과소평가▼
기업이 잘나가고 있을 때를 기준으로 ‘설마 M&A가 시도되랴’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포수가 들소의 허점을 노리듯 기업사냥꾼들은 표적기업의 주가가 크게 떨어질 때 행동을 개시한다. 삼성전자의 주가는 4월에 64만원이었으나 최근 42만원까지 주저앉았다. 지난해 3월 주가가 27만원 수준이던 점을 감안하면 30만원 정도로 떨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때 외국 헤지펀드가 시가보다 30% 높은 가격에 공개매수를 선언하면 우호적인 주주들도 주식을 팔아넘겨 사냥은 성공하게 되는 것이다.
주식매입자금만 30조원을 상회할 텐데 그 돈을 어떻게 조달하며, 인수 후 금융비용 부담을 어떻게 감당하겠느냐고 물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냥감만 확실하면 자금을 대려는 이들은 넘쳐난다. 얼마 전 보도에 따르면 아이칸씨는 30억 달러 규모의 헤지펀드를 조성키로 했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헤지펀드는 7000개가 넘고 운용 자산도 1조 달러에 이른다. 마땅한 투자대상만 있으면 하루에도 수천억 달러가 국경을 넘는 게 국제자본시장의 생리다.
M&A 후 자금 회수방법은 여러 가지다. 삼성전자를 통째로 팔 수도 있고, 보유현금을 유상감자나 배당을 통해 빼먹을 수도 있다. 또 사냥꾼이 들소를 잡아 부위별로 팔듯 휴대전화사업 부문은 중국 업체에, 디지털 가전부문은 다른 업체에 매각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회수할 수도 있다. 이는 JP모건이나 조지 소로스의 퀀텀펀드, 영국계 투자회사 BIH가 국내회사를 인수해 써먹었던 방법이기도 하다.
전쟁이 날 가능성이 낮다고 군대를 없애지 않듯 우리 기업들이 외국인의 농간에 휘둘리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 삼성전자마저 M&A를 걱정하는 처지라면 더 작은 기업들은 말할 나위도 없지 않겠는가. 우량기업도 실적이 악화되고 경영난이 닥칠 때가 있기 마련이다. 그때마다 주가가 급락하고 M&A 불안감에 떨어야 한다면 기업은 투자와 경쟁력 배양에 힘쓰기보다 실적관리에 연연할 수밖에 없다. M&A 공격을 받으면 방어에 전념하느라 실적회복을 위한 자구노력마저 변변히 기울이지 못할 것이다.
▼의결권 제한땐 눈뜨고 당할판▼
지금 외국인이 우리 간판기업들의 지분을 50% 이상 차지하고 있는데도 이를 건전한 투자로만 생각하고 M&A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이제 우리 경제와 기업의 리스크를 찬찬히 살피고 허술한 부분을 방비했으면 한다. 외국에 없는 의결권 규제는 풀고, 외국에서 사용하는 방어 장치들을 적절히 도입해 우리 기업들이 역차별 받는 일이 없어야겠다. 지난번 외환위기 때는 전혀 생각도, 준비도 못한 채 재앙을 맞았지만 더 이상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박용성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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