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 침체가 장기화하자 먼저 임금동결을 선언하는 노조가 생기는가 하면 노조의 투쟁기금으로 모아논 돈을 지역 경제 살리기에 쓰겠다고 나선 노조도 있다.
▽노사 상생의 모델들=휴대전화 제조업체인 팬택 노조는 13일 경기침체와 회사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대의원회의를 거쳐 스스로 내년 임금동결을 결의했다고 밝혔다.
그러자 사 측은 "노조가 어려운 결정을 내린 데 대해 경영진으로 부끄럽다"며 "회사가 어려운 간 사실이지만 임금을 동결할 정도는 아니다"면서 10%를 인상해주기로 했다.
또 SK케미칼 노사는 회사가 고용안정을 보장하는 대신 경영 성과에 따라 조합원들의 임금 인상률을 사업본부별로 달리 적용키로 하는 데 합의했다.
지난 8월 파업으로 647명의 조합원이 징계를 받은 LG칼텍스정유 노조는 지난 9일 화합과 협력의 노사 관계를 노조 활동의 새로운 방향으로 설정했다.
지난 10월 민주노총을 탈퇴한 LG정유 노조는 △현장관리 철저 △혁신활동 △인사문화 정착 등의 세부 실천 계획도 수립했고, 내년 초 쯤 '무분규 선언'을 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1980년대 '골리앗 투쟁' 등으로 강성 노동운동의 중심에 섰던 현대중공업 노조는 지난 10월 민주노총과 결별한 데 이어 10년째 계속돼온 무분규로 적립된 '투쟁기금' 100억원 가운데 일부를 지역경제 살리기를 위해 쓰겠다고 밝혔다.
현중 노조는 최근 울산 동구청에 온열 치료기, 안마기, 정수기 등 3500만원 상당의 물품 200여점을 기증했다. 또 관내 소년소녀 가장 40명에게 매달 후원금을 전달하고 있다.
유통업계의 강성노조로 꼽히는 현대백화점 노조는 연말을 맞아 22일까지 '불우이웃돕기' 행사를 벌이고 있는데 먹을거리, 티켓 판매 행사 등 각종 수익사업을 통해 모아질 3000여만원을 양천구 복지관 등에 기증할 계획이다.
▽왜 변화하나=올 하투(夏鬪) 과정에서 여론의 지지가 없는 파업 위주의 강경한 노동운동은 더 이상 설 곳이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LG정유 노조가 지난 8월 "고임금 근로자들이 왠 파업이냐"는 여론의 뭇매를 맞고 파업을 접은 것이나, 지난 달 전국공무원노조가 파업에 들어갔다가 "신분을 보장받은 공무원들이 어떻게 단체행동권을 요구하며 불법파업을 하느냐"는 비판 속에 백기투항한 것도 실제로 여론의 힘 때문이다.
때문에 앞으로 노조가 사 측과 상생을 모색하고, 노동운동도 장외투쟁에서 장내대화로 변화하는 움직임이 더 뚜렷해질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노사정위원회 관계자는 19일 "지역 봉사활동과 노사 신뢰를 바탕으로 조합원과 회사, 지역 사회가 하나 되는 노동운동 형태가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남성일 서강대 교수는 "내년에는 경제가 더 어려워지고 실업과 구조조정 문제 등 큰 현안들이 즐비한 만큼 노사가 사회적 임금 안정과 고용 안정을 동시에 추구하는 상생의 문화가 더욱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종훈기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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