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형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몇 년 전 회사 부도로 인생의 밑바닥까지 간 모습이더니 최근 재기하셨다는 소식에 저 역시 펄쩍 뛸 정도로 기뻤습니다.
아직은 지방에 작은 공장을 하나 마련한 수준이고, 공장 직원들 뒷바라지를 하느라 언니까지 동원돼 휴일도 없이 일한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그러나 좌절을 딛고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는 형 같은 기업인들이 있기에 한국 경제가, 한국 사회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에 들어간 아들도 부모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아르바이트한 돈으로 배낭여행을 갔다니 참 장한 일입니다.
J형.
2005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돌아보면 지난해 우리 사회는 ‘남 탓’으로 1년을 보낸 것 같습니다. 교수들이 한국사회를 가장 잘 표현한 말로 ‘당동벌이(黨同伐異)’를 꼽을 정도로 작년 한 해는 분열과 갈등이 많았습니다.
자칭 진보세력은 보수층이 ‘개혁’의 발목을 잡는다면서 이들 모두를 개혁 대상으로 몰아붙였습니다. 자칭 보수세력은 작은 정부와 시장경제를 주장하면서도 경제가 나쁜 것을 정부와 정권 탓으로만 돌리는 자가당착을 보였습니다.
마음을 열고 사안별로 내용을 살피기보다 내 편의 주장은 옳고 네 편은 그르다는 전제 위에 서로 비난한 것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광복 후 좌우대립 상황은 잘 모르지만 대학시절 ‘학생운동이냐 아니냐’의 이분법적 압박을 받던 세월은 기억합니다. 당시에 제3의 생각을 하거나 중간지대에 머무는 것은 ‘비겁함’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어느 편에 설 건가’를 끊임없이 요구받았던 당시의 악몽이 되살아난 듯한 작년 한 해였습니다.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저부터 반성합니다.
말로는 실사구시(實事求是)와 실용주의를 외치면서 실제로는 어떤 일이 있을 때 손쉽게 비난의 대상이나, 희생양을 찾았던 것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현상에 대해 ‘과학적으로’ 원인과 대안을 찾아내는 지식인의 역할을 다했는지 생각해봅니다.
화합과 희망과 대안을 제시하기보다 분열과 좌절과 비난을 부추긴 것은 아닌지 반성합니다.
J형.
새해에는 형처럼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거대한 폐선(廢船)으로 바다를 막아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것처럼, 황우석 교수가 수천 수만 번 실험을 거듭해 세계적인 연구성과를 낸 것처럼, 새해에는 환경을 탓하기보다 스스로 무언가를 이루려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사회가 거대담론에서 디테일로, 이념에서 현실적 합리주의로, 비난에서 축복으로 나아가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새해 큰 복 받으십시오.
신연수 경제부 차장 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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