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전제품이 1990년대 초반까지 세계시장에서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는 미국의 한 경제전문 웹사이트에 실린 칼럼이 잘 보여 준다. ‘CES에서 주목할 기업, 삼성’이라는 글에서 필자인 존 드보랙 씨는 8년 전 한국 방문 때 들었다는 다음 일화를 소개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출장길에 미국의 한 백화점에 들렀다. 이 회장은 이곳저곳 열심히 찾아봤지만 한국 제품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없었다. 이 회장이 판매원에게 ‘한국산은 왜 없느냐’고 물었을 때 돌아온 퉁명스러운 대답은 ‘쓰레기라서’였다.
▷한국 제품이 ‘쓰레기’에서 ‘최고급’으로 변신하기까지 걸린 기간은 10년이 채 안 된다. 메이시 등의 고가(高價) 매장에 본격 진출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다. 변신 속도가 너무 빠르다 보니 우리 국민의 상식과 통념이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다. 미국에서는 한국 제품보다 15%나 싼 일본 제품이 한국 백화점에서는 30% 비싼 값에 버젓이 팔리는 이유가 그 때문일 것이다.
▷세계시장에서는 일류 대접을 받지만 국내에서는 이류 대접을 못 면하는 것이 비단 가전제품뿐만은 아닐 것이다. 제품을 떠나 기업 자체가 그런 대접을 받고 있다. 외환위기에서 살아남은 기업들은 대부분 경영 체질을 일신했다. 외형을 키우기 위해 수익성 없는 사업에 마구잡이로 뛰어드는 일은 이제 정부가 사정을 해도 안 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기업이 이미 벗어 버린 허물을 상대로 출자총액규제다, 뭐다 옭아매기에 바쁘니 답답한 노릇이다.
천광암 논설위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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