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설동훈]‘노인 일자리’ 더 미룰수 없다

  • 입력 2005년 1월 12일 18시 09분


한국은 공업화와 민주화를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달성하더니 고령화도 그렇게 할 전망이다. 최근 발간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50년 내에 OECD 회원국 가운데 노인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될 것이라고 한다.

현재 한국인은 평균적으로 28.8세(대졸자 기준) 때 취업하여 57.4세(10년 이상 장기 근속자 기준) 때 주된 일자리에서 정년퇴직한 후 약 10년간 제2의 노동생애 기간을 거쳐 68.1세 때 노동시장에서 완전 은퇴하고 77세에 사망한다. 직업 경력을 늦게 시작하고 일찍 끝내는 추세다. 고학력화와 구직기간 연장으로 인해 취업연령이 상승하고 있고 경기침체로 인해 한국인이 체감하는 실제 퇴직 연령은 낮아지고 있어 아무런 일자리 없이 생활하는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 수십 년 후면 한국인들의 평균 수명은 100세 가까이로 늘어날 것이다. 인생이 100년으로 길어지면 ‘29년 양육·교육, 29년 취업, 19년 여생’이라는 현재의 노동생애 패턴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고령화 대책의 핵심은 노인에게 일을 주는 것이다. 이미 10여 년 전에 노동부에서는 고령자 취업 적합 직종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그 일자리의 상당 부분을 젊은이들이 차지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산업구조 조정의 와중에 있는 한국 사회에서 젊은이들도 일자리를 구하기 쉽지 않고 그나마 구한 일자리도 비정규직이 태반인 요즘 상황에서 노인의 일자리 창출은 향후 과제로 밀려나고 있다.

고령화 쇼크는 이미 전달되기 시작하였다. 정부는 인력 공급 대책을 수립할 때 노인 인력을 포함시켜야 한다. 65세 미만의 준 고령자는 젊은이와 모든 측면에서 동일하며 65세 이상의 고령자에 대해서는 다양한 우대조치가 필요하다는 방향으로 사회적 인식을 바꾸어나가야 한다.

생각만 해서는 안 되고 당장 실천에 옮겨야 한다. 준 고령 인력의 고용안정을 도모함과 동시에 고령 인력의 재취업 또는 재고용을 위한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기업과 사회에서 노인 취업을 촉진하여야 한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조직체의 정년을 연장하거나 아예 폐지하여 노인 취업을 촉진하려는 정책을 펴고 있다. 고령화에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노동력 부족에 대처하는 한편 사회의 활력을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고령화의 충격을 극심하게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한국사회에서도 ‘연령에 의한 강제 퇴직제도’는 언젠가는 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민간노동시장에서 흡수되지 않은 고 연령자에 대해서는 금융·재정 지원과 교육·컨설팅 등 다양한 각도에서 자영업 창업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민간부문의 취업과 자영업 창업 등 경쟁적 노동시장에서의 취업이 어려운 고 연령자에 대해서는 ‘사회적 일자리’를 제공하여야 한다. 생계에 심각한 문제가 없는 고 연령자에 대해서는 개별 특성에 맞는 자원봉사활동 참여를 유도하여야 한다.

‘일’은 생계를 위한 ‘노동’보다는 광의의 개념이다. 고역(苦役)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와 삶의 의미를 확인하는 징표로서의 일을 노인에게 제공하여야 한다. 몸을 움직임으로써 건강을 유지하고, 자신의 활동이 사회에 보탬이 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일하는 100세인’은 미래 선진 한국의 지향점이 될 수 있다.

설동훈 전북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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