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은 3일 AT&T의 설립과 성장, 위축, 몰락 과정을 세계 최고의 기술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관점에서 조명했다. 미국 정부의 독점 규제와 AT&T 경영진의 신흥 시장에 대한 판단 착오도 몰락을 가속화시키는 요소였다.
▽신기술 발명=1947년 말 AT&T 산하 벨연구소 과학자 3명이 트랜지스터를 발명했다. 진공관을 이용한 장거리전화의 불편을 단숨에 해소한 혁신이었다. 이 과학자 3명은 1956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트랜지스터는 20세기 후반 통신업계에 혁명을 불러왔다. 컴퓨터와 인공위성, 우주 개발 등의 발전도 이끌었다. 1876년 전화기 발명 이듬해 설립된 벨 전화회사는 트랜지스터에 힘입어 비약적으로 성장했으며 AT&T로 개명됐다. 1984년에는 직원 수가 100만 명에 이르렀다.
▽갈등과 분열=트랜지스터 발명은 역설적으로 몰락의 씨앗이었다. 벨연구소의 내부 갈등은 일부 연구진의 이탈을 불러왔다. 8명이 빠져나가 페어차일드 반도체를 세웠으며 인터넷 전화기술을 개발한 스웨덴의 바스티안 클레인도 벨연구소 소속이었다.
벨연구소는 1947년 휴대전화 아이디어를 비롯해 유닉스 컴퓨터 운영체제와 음성압축 기술도 개발했다.
분열되긴 했지만 벨연구소의 과학자들은 세계 최고의 연구개발 능력을 갖췄다는 자부심이 여전했다.
▽강제 분할=미 정부는 독점기업인 AT&T를 1984년 강제 분할했다. 공정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서였다. 7개 지역 회사(Baby Bells)가 탄생했고 AT&T는 장거리 전화사업과 전화기 제조, 연구개발만 맡게 됐다. SBC 커뮤니케이션도 이때 분할된 한 지역 회사가 모체였다.
AT&T는 트랜지스터 제조기법도 공개했다. 2만5000달러(약 2600만 원)만 내면 노하우를 제공했다. IBM과 제너럴 일렉트릭,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등이 기회를 잡았다. 일본 소니도 이를 토대로 도약의 계기를 잡았다.
트랜지스터는 집적회로(IC)로 발전했고 이는 마이크로프로세서로 진화했다.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와 페어차일드가 최고 수혜자였다. AT&T는 이 과정에서 소외됐다.
▽판단 착오=1983년 AT&T 경영진은 무선전화사업을 지역회사가 맡도록 하는 결정을 내렸다. 무선전화의 성장 가능성을 제대로 짚지 못한 실책이었다.
AT&T는 뒤늦게 1993년 무선전화업체를 인수한 뒤 AT&T 와이어리스로 분사했으나 지난해 싱귤러 와이어리스에 인수당했다. 이 밖에도 AT&T는 IBM에 버금가는 컴퓨터 제조업체가 될 기회를 놓쳤고 신흥 팩시밀리 시장도 놓치고 말았다.
컬럼비아대의 원격정보연구소 엘리 노엄 소장은 “AT&T는 전자공학의 혁명을 일으켰으나 결국에는 그 혁명에 잡아먹혔다”고 평가했다.
이진 기자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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