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씨처럼 일을 하면서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근로빈곤층(Working Poor)’이 늘고 있다.
근로빈곤층의 증가는 경기침체 등으로 제대로 된 일자리가 줄어든 게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정부의 생계비 지원도 받지 못해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근로빈곤층 실태=지난해 12월 대구에서 굶어죽은 뒤 장롱 속에 방치된 네 살 난 아이의 비극적인 모습은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건설노동자인 이 아이의 아버지는 일감이 줄어 소득이 최저생계비(4인 가족 기준 106만 원) 이하로 떨어졌다. 그러나 이들 가족은 정부의 생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기초생활보호대상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일정한 소득이 있던 사람이 일시적으로 소득이 떨어졌다고 해서 정부 지원을 받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자문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는 지난해 11월 ‘일을 통한 빈곤 탈출 지원정책’을 발표하면서 근로빈곤층 규모를 132만 명으로 추산한 바 있다.
근로빈곤층 통계는 과거에 발표된 적이 없기 때문에 증감 여부를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는 “임시직 등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증가하면서 일을 하면서도 충분한 소득을 얻지 못하는 근로빈곤층이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실업률은 안정되고 있는데도 가난하게 사는 사람은 늘고 있는 추세다.
▽‘복지 사각(死角)지대’에 놓여 있는 근로빈곤층=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에서 5평 남짓한 통닭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 씨(50)는 매달 버는 돈이 70만 원에 불과하다. 소득이 최저생계비에 턱없이 못 미치지만 팔리지도 않는 20평형대 아파트를 갖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한다.
그나마 자신의 가게를 운영하는 김 씨는 나은 편이다. 공사판을 옮겨 다니며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 일용직은 언제 일감이 끊길지 알 수 없다.
신발공장에서 쫓겨나 건설 잡일을 하는 조 씨는 “빚은 늘어만 가고 일거리는 줄어들어 차라리 일을 포기하고 국가보조금이나 탈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고 말했다.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가 추산한 132만 명의 근로빈곤층 가운데 정부 지원을 받는 기초생활보호대상자는 30만 명에 그친다. 나머지 102만 명은 약간의 재산(4인 가족 기준 6000만 원)이 있거나 소득이 최저생계비를 조금 웃돌아 ‘사회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번듯한 일자리 창출이 가장 큰 과제=전문가들은 근로빈곤층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려면 민간부문에서 안정적인 일자리가 많이 생겨나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다만 이들의 근로 의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다양한 제도의 도입과 함께 이들에 대한 교육훈련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미곤(金美坤) 연구위원은 “근로빈곤층이 증가하면 일을 해도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이 사회 전반적으로 확산될 수 있다”며 “정부로서는 근로빈곤층의 근로 의욕을 높일 수 있는 인센티브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대 박능후(朴(능,릉)厚·사회복지학과) 교수도 “근로빈곤층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는 최저임금 수준을 높이거나 근로 동기를 부여하는 방법 등 2가지가 있다”며 “최저임금 수준을 높이면 기업체의 부담이 커지는 부작용이 있으므로 근로 동기를 부여하는 제도의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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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치영 기자 higgledy@donga.com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빈부격차 작년에 다시 커져…경기악화 서민층 가장 타격▼
지난해 말 대통령자문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는 재정경제부 보건복지부 노동부 등과 함께 빈곤대책을 마련하면서 ‘통계 부실’ 때문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제대로 된 빈곤 통계가 사실상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빈곤 대책을 세우려면 관련 통계부터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소득양극화 현상은 기존의 통계 자료로도 쉽게 확인되고 있다.
통계청이 정기적으로 발표하는 ‘도시근로자가구 가계수지 동향’은 소득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가계수지 동향에서는 보통 상위 20% 가구의 소득을 하위 20% 가구의 소득으로 나눈 ‘소득 5분위 배율’을 보면 소득 격차 추이가 드러난다. 배율이 클수록 소득 격차는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해 3분기(7∼9월) 기준으로 상위 20%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619만1200원인 반면 하위 20%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15만6400원이다. 3분기 기준으로 1999년부터 2004년까지 최근 6년간 소득 5분위 배율을 보면 2001년이 5.50배로 소득 격차가 가장 컸다.
이후 2002년 5.12배, 2003년 5.16배 등으로 주춤하다가 지난해 5.35배로 다시 커졌다.
이는 지난해 내수 침체로 경기가 극도로 악화되면서 고소득층보다는 저소득층의 소득이 더욱 큰 타격을 받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때문에 저소득층의 소득이 늘어나 결과적으로 소득 격차가 줄어들기 위해서는 경기 활성화가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지적이다.
공종식 기자 kong@donga.com
▼외국의 근로빈곤층 지원▼
외국의 근로빈곤층 대책은 간접 지원과 직접 지원으로 구분된다.
미국과 호주는 빈곤계층의 근로 의욕을 높여 소득이 늘어나도록 간접 지원하는 반면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국가 대부분은 최저소득을 국가가 직접 보장하고 있다.
근로소득보전세제(EITC) 체계는 대표적인 간접 지원책. 근로빈곤층의 소득이 일정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정부가 세금을 되돌려주는 방식이다.
근로빈곤층에 속하는 사람은 자신이 낸 세금이 공제액보다 많을 때는 세금에서 공제액을 빼고 내면 된다. 세금이 공제액보다 적을 경우 근로빈곤층은 그 차액을 현금으로 받을 수 있다.
EITC 제도가 실시되면 세금을 전혀 내지 않은 사람도 소득공제액을 정부에서 보조받을 수 있다. 기존 연말정산제도와 다른점이다.
정부가 근로빈곤층의 일할 의욕을 높여 빈곤 문제를 간접적으로 해결하려는 게 이 제도의 목적인 셈.
예를 들어 근로소득이 연 1500만 원인 근로빈곤층의 소득공제액이 200만 원이고 납부해야 할 세금이 100만 원인 경우 국가는 공제액과 세금의 차액인 100만 원(200만 원―100만 원)을 보조금으로 지급한다. 세금이 같은 상태에서 소득공제액이 300만 원으로 늘 경우 보조금은 200만 원(300만 원―100만 원)으로 증가한다.
미국의 경우 두 자녀를 둔 가장의 연간 소득이 3만4178달러를 넘지 않으면 EITC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2002년 현재 2000만 가구가 EITC 보조금을 받고 있다.
유럽 국가들은 이른바 최저소득보장제도(GI)를 통해 모든 빈곤층에 대한 최저소득과 의료, 주거 등 기본적인 서비스 제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실업급여를 다 쓰고도 여전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장기 실업자에게까지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1990년 중반 이후 네덜란드와 덴마크 등 일부 유럽 국가가 적정 사회보장 수준을 유지하면서 과도한 급여를 줄여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정수현(鄭秀賢) 사회복지사는 “직업훈련원과 사회복지관 등의 교육 프로그램을 다양화해 근로빈곤층에 일할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국의 근로빈곤층 지원 체제 | ||
구분 | 근로소득보전세제(EITC) | 최저소득보장제도(GI) |
시행 국가 | 미국 영국 뉴질랜드 호주 | 유럽 대부분 국가 |
개념 | 소득이 일정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정부가 세금을 되돌려주는 방식으로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제도 | 근로 유무와 관계없이 국가가 급여를 제공하는 제도 |
특징 | 취업할 경우 소득이 증가하도록 유도 | 모든 빈곤층에 최저 생활을 보장 |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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