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자 정부는 다시 “확정된 것이 없다”며 한발 물러섰다. 시장상황에 따라 정부 정책방향이 오락가락한 것.
지난해 이후 부동산 투기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정부가 부동산 시장에 끊임없이 개입하면서 주택시장의 왜곡만 낳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외환위기 이후 정부규제 완화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시장개입에 따른 정책실패가 계속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한국 관련 보고서에서 ‘언제, 어디서나 간섭하는 한국 정부 관료의 손’을 ‘유비쿼터스 핸드(The Ubiquitous Hand)’로 비유하면서 정부실패를 비판했다.
▽‘정부 입’만 바라보는 시장참여자=금리정책의 주체는 한국은행이다. 그러나 채권을 사고파는 채권 매니저들은 콜금리 결정 전날이면 정부 관계자들의 입만 쳐다본다.
실제로 박병원(朴炳元) 재정경제부 차관보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콜금리 동결을 결정하기 하루 전인 14일 “경기회복에 좀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금리정책이나 통화정책이 운영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철환(李喆煥) 재경부 국고국장도 이날 “콜금리 인하 여부는 한은이 결정할 사안이나 지금은 저금리 기조가 유지될 필요성이 있다”고 거들었다.
이 같은 정부 입장이 알려지면서 14일 채권시장에서 국고채 3년물 금리의 최고치와 최저치의 차이가 0.07%포인트에 이르는 등 ‘널뛰기 장세’가 이어졌다. 일부 채권 매니저가 콜금리 동결 또는 하락(채권 가격은 동결 또는 상승)에 ‘베팅’하면서 물량을 일부 서둘러 처분한 탓이다.
▽정부 개입의 부작용=‘시장실패’ 현상이 나타나면 정부가 개입해야 하지만 한국 관료는 시장을 거스르는 개입을 한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받고 있다.
IMF는 최근 보고서에서 중소기업 정책에 대한 정부 개입을 예로 들었다. 정부는 중소기업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수시로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지원을 주도했다. 그 결과 부실 중소기업이 시장에서 제대로 퇴출되지 않아 만성적인 수익률 저하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 IMF의 분석.
이 밖에 공공택지 안에서 공급되는 소형주택에 대해 택지비와 공사비 등 분양가 주요항목을 공개하고 원가연동제(분양가 상한제)를 실시하고 있는 것도 시장을 왜곡한 대표적 사례로 거론된다.
실제로 이 같은 원가연동제가 처음으로 적용되는 판교신도시는 벌써부터 주변 아파트와의 시세차익이 예상되면서 ‘판교 로토’라는 신조어를 낳기도 했다.
외국자본과 관련해서도 얼마 전까지 “적극 유치하겠다”고 나섰다가 최근 다시 ‘규제’쪽으로 강화한 것도 일관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웨인 첨리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 회장은 “외국기업의 적대적 인수 및 합병(M&A)을 막기 위해 한국 정부가 규제에 나서는 것은 당연하지만 지나친 규제는 자칫 한국으로 올 수 있는 돈을 경쟁국으로 가게 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차라리 시장에 맡겨라”=전문가들은 가능한 한 정부 역할을 줄이고 시장의 역할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일본도 전통적으로 관료들의 입김이 컸던 금융과 종합건설업은 낮은 경쟁력으로 일본 경제에 부담이 된 반면 민간이 주도한 자동차산업은 일본 경제의 회생을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도 지난해부터 정부가 노동문제에 대해 개입을 줄이면서 노사 문제가 상대적으로 안정되고 있다고 IMF가 평가하기도 했다.
대한상공회의소 이경상(李京相) 기업정책팀장은 “정부가 대기업 지배구조 문제 등 시장과 기업을 개혁 대상으로 보고 각종 개입을 하고 있지만 체계적인 분석 없이 강행하는 경우가 많다”며 “시장이 스스로 해결할 틈을 안 주면 오히려 더 큰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공종식 기자 kong@donga.com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유비쿼터스 핸드(The Ubiquitous Hand):
국제통화기금(IMF)이 최근 한국 관련 보고서에서 선보인 표현. ‘언제 어디서나 컴퓨터 망에 접속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하는 ‘유비쿼터스’와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을 결합시킨 것으로 한국 관료들을 ‘언제 어디서나 시장에 개입하는 손’으로 비유한 말.
▼정부자금 받은 中企 영업이익률 ‘뒷걸음’▼
부실 경영으로 경쟁력이 떨어진 중소기업에까지 정부가 자금을 지원하는 등 정책자금이 비효율적으로 쓰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15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중소기업 정책금융 지원효과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중소기업 정책자금을 빌린 기업의 2003년 평균 영업이익률은 3.0%로 2000년(6.8%)에 비해 3.8%포인트 떨어졌다. 이는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7.7%)보다 4.7%포인트 낮은 것이다.
이에 비해 정부의 정책자금을 지원받지 않은 일반 기업의 영업이익률은 1998년 3.8%에서 2003년 5.1%로 급증했다. 정부의 도움을 받지 않은 기업의 수익성이 정책자금에 의존한 기업보다 높아진 것.
정책자금을 지원받은 기업들은 경영이 어려워지면 정부가 또 도와줄 것으로 기대하는 등 도덕적 해이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중소기업 정책자금은 정부가 시중 금리보다 2%포인트 안팎 낮은 금리로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기업에 대출해 주는 돈. 1998년 3조9088억 원이던 정책자금 규모는 2003년 5조9660억 원으로 불어났다.
KDI 김현욱(金鉉旭) 연구위원은 “중소기업청 등이 대출심사 때 업종과 업력, 종업원 수 등 기본적인 사항만 볼 뿐 기업의 성장성을 검증하지 않는 탓에 자금이 효율적으로 쓰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들은 정책자금으로 기술 개발 등 장기 성장동력을 키우는 데 쓰지 않고 기업 내부에 유보하는 사례가 많았다.
1998∼2003년 중소기업진흥청과 산업자원부 등이 지원한 정책자금 가운데 기술 개발에 투자된 금액은 15.0%에 그쳤다. 기업들은 정책자금의 대부분을 부동산 매입용이나 운용 경비로 사용했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정책자금을 어떻게 사용해 얼마나 수익을 내는지를 따지는 사후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중소기업진흥청 정기환(鄭琪煥) 사무관은 “자금 지원 후 매출액과 고용 동향을 확인하긴 하지만 수익성까지 점검할 여력이 없다”고 설명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