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잘 만나 기업총수?…재벌 후계자 혹독한 ‘대권’ 수업

  • 입력 2005년 3월 3일 18시 08분



《주요 그룹 2세, 3세 후계자들의 경영권 승계 작업이 가속화되면서 이들의 ‘경영 수업’ 방식이 주목받고 있다. 2, 3세의 능력 발휘 여부에 따라 기업의 향후 운명이 달라지게 마련. 그만큼 이들이 어떤 훈련을 받고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갖췄는지가 업계의 관심거리다.》

▽무슨 경영 수업을 어떻게 받나=“결재 받기가 힘들어요. 해외출장이나 지방의 생산현장에 내려가고 없을 때가 많거든요.”

현대자동차 정의선 사장은 ‘현장 수업’에 주력하고 있다고 총괄기획본부의 한 임원은 말했다. 정 사장은 아버지인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의 현장 교육 방침에 따라 일주일에 한 번꼴로 지방 출장을 다니고 있다.

최근 2, 3세 경영 수업의 특징은 ‘OJT(On the Job Training)’식의 현장 체험 위주로 진행된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외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 역시 계열사와 현지법인을 방문하고 있다. 삼성그룹 사장단 회의에도 참석해 주요 의사결정이나 전략수립 과정을 지켜본다.

동원그룹 김재철 회장의 아들인 동원금융지주 김남구 대표가 6개월간 원양어선을 타고 참치를 잡은 경험은 대표적인 현장 수업이다.

▽회사 총역량 투입되는 전략적 리더 교육=2, 3세들의 경영 수업에는 회사 내 고급두뇌들이 동원된다.

SK그룹 최태원 회장은 SK경영연구소, 정 사장은 현대차 소속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를 통해 중요 현안과 연구보고서를 수시로 브리핑 받는다. 이 상무는 삼성경제연구소 박사들과 함께 스터디그룹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과외 수업’을 한다. 또 ‘사부’격인 삼성전자 김현덕 부사장 등에게서 조언을 받는다.

2, 3세들은 어려서부터 철저하게 커리어 관리를 받는다. 대부분이 일류대 졸업 후 미국 명문대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거쳤다. ‘국제 감각을 키운다’는 취지로 해외에서 1∼2년 근무하기도 한다. 회사에 들어와서는 영업, 마케팅 등 경력 관리에 필요한 여러 분야를 거친다.

효성그룹 조석래 회장의 아들인 조현준 부사장 등 3형제는 미국 변호사와 컨설턴트 등으로 활동한 경력을 경영에 활용하는 사례다.

분야별 ‘맛보기’가 끝나면 대다수가 경영기획실이나 기획총괄본부로 배치된다. 전반적인 회사 흐름을 꿰뚫고 핵심 사업을 추진할 기회가 주어지는 곳이다.

▽경영 수업이 실력 발휘로 연결돼야=2, 3세와 함께 일하는 임원들은 “아버지에게서 받는 24시간 동행 수업을 따라올 교육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밀착 동행하며 아버지의 경영철학과 리더십을 배우는 것 자체가 강도 높은 훈련이 된다는 것.

삼성그룹의 한 고위 임원은 “이 회장은 아들에게 사람을 다스리는 법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며 “이 상무가 임원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저렇게까지 철저하게 교육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무서울 정도”라고 말했다.

후계자들에게는 전문경영인 못지않은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과제가 있다. 업계 관계자 및 시장의 투자자들은 “적법한 후계자 승계를 문제 삼을 수는 없지만 자질을 갖춘 리더인지는 스스로 검증받아야 한다”고 주문한다.

한 증권사 임원은 “오너는 전문경영인과 달리 잘못을 견제할 장치가 적어 제대로 훈련받지 않은 후계자의 대권 승계는 기업에 리스크 요인이 될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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