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 실물지표로 본 景氣… 올 1~2월, 작년 1~2월 비교

  • 입력 2005년 3월 13일 18시 11분


《“백화점, 할인점은 어떤지 몰라도 지방 상인이나 서민을 상대하는 도매시장은 지난해 이맘때보다 더 안 좋아요. 바닥을 치고 오르는 것이 아니라 바닥을 ‘파고’ 있는 것 같습니다.” 11일 오후 11시 서울 동대문의 의류도매상가 누죤 3층에서 만난 신사복 매장 주인 김명규(金明圭·49) 씨는 “경기가 살아나느냐”라는 질문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실제로 경기가 좋을 때라면 지방에서 올라온 ‘보따리 상인’으로 가득 차야 할 시간인데도 매장은 썰렁했다.》

경기는 정말 살아나고 있는 것인가. 본보 경제부는 실제 현장 경기가 어떤지 알아보기 위해 삼성경제연구소와 공동으로 소비 및 생산 현황을 잘 반영하는 대표적인 10개 실물경제 지표를 선정해 조사해 봤다. 조사 대상 기간은 지난해 1, 2월과 올해 같은 기간이었다.

취재 결과 서울의 중산층 이상을 중심으로 소비 부문에서 다소 회복 기미가 있지만 전반적인 현장 경기는 아직 ‘봄’과는 거리가 멀었다. 고(高)유가와 건설경기 위축으로 휘발유, 시멘트 판매는 지난해보다 줄었고 기계류 생산도 부진했다. 지방에서는 소비도 여전히 얼어붙어 있어 경기 회복까지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최근 정부가 내세우는 회복 조짐이 ‘희망 섞인 관측’으로 경제를 띄우려는 ‘토크업 이코노미(Talk Up Economy)’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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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산층과 지방·서민 소비 엇갈려=10개 실물경제 지표 중 백화점 남성복 매장, 패밀리 레스토랑, 세탁기 판매 등 3개는 소비 회복의 조짐이 뚜렷한 편이었다.

롯데백화점 신사복 매장의 올해 1, 2월 매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5% 늘었다. 마르쉐, 아웃백스테이크 등 외식업체도 같은 기간 매출이 10%가량 증가했다. LG전자의 올해 1, 2월 세탁기 매출은 사용하던 세탁기의 가격을 쳐주고 고급형 드럼세탁기로 바꿔 주는 ‘보상판매’의 영향 등으로 지난해보다 20% 정도 늘었다.

그러나 같은 소비 부문이라도 놀이공원의 입장객은 오히려 줄었다. 서울 잠실 롯데월드 입장객은 지난해 1, 2월 107만4000명에서 올해 98만5000명으로 8.3% 감소했다.

지방 상인을 싣고 동대문 의류도매상가 누죤을 찾은 전세버스는 올 1, 2월 745대로 작년 883대에 비해 15.6% 줄어 지방 경제의 어려움을 반영했다.

국내 자동차 판매대수도 지난해보다 8.4% 감소한 15만3000대에 그쳤다.

▽건설·생산 현장은 여전히 찬바람=한국양회공업협회가 발표한 1, 2월 국내 시멘트 출하량은 430만 t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620만 t)보다 30.6% 줄었다. 쌍용양회 시멘트영업기획팀 백승명(白承明) 과장은 “건설경기 악화와 추운 날씨 등으로 시멘트 판매가 줄었다”고 설명했다.

고유가의 영향으로 휘발유, 경유 소비도 줄었다. 1월 중 휘발유 및 경유 판매량은 지난해보다 각각 1.02%와 4.8% 감소했다.

기계류 생산의 기초소재로 쓰이는 베어링 판매도 저조했다.

국내 최대 베어링 제조업체인 FAG베어링코리아의 1, 2월 수출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12% 늘었지만 내수 판매는 오히려 5% 줄었다.

또 화물 물동량을 보여 주는 대형 화물차(4종) 및 특수 화물차(5종)의 고속도로 통행량도 지난해 1, 2월 776만2739대에서 올해 710만3470대로 8.5% 감소했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전문가 진단▼

▽전문가들 ‘지난해 4월을 기억하라’=각종 지표들이 엇갈려 나타남에 따라 민간경제연구소들은 경제 전망에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근의 소비 회복 조짐은 높은 실적을 낸 대기업들이 연말에 지급한 상여금 때문에 생긴 ‘반짝 경기’일 수 있다는 것.

LG경제연구원 신민영(申민榮) 연구위원은 “지난해 4월 경기 회복론이 있었으나 고유가, 탄핵 파동 등으로 다시 추락했다”면서 “정부는 충격적인 정책을 삼가고 능력이 검증된 경제부총리를 임명하는 등 시장 친화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삼성경제연구소 김경원(金京源) 상무는 “고유가와 원화가치 상승이라는 대외 변수를 고려할 때 수출 경기가 빠르게 냉각될 수 있다”면서 “수출이 줄어들면서 내수가 살아나지 않는다면 올해 성장률은 작년보다 더 떨어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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