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전망대]신연수/최태원號의 새로운 도전

  • 입력 2005년 3월 14일 18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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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1세대 기업인 중에서도 고(故) 최종현 SK 회장은 매우 지적인 인물이었다.

서울대 농대를 거쳐 미국 위스콘신대 화학과와 시카고대 대학원(경제학)을 나왔다는 경력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생전에 경제학자나 과학자들과 토론을 즐겼고 권위주의를 체질적으로 싫어했다.

잘 알려진 일화 한 토막.

1994년 청와대에서 ‘신경제 추진회의’가 열렸다. 대통령이 연설문을 읽을 때 다른 참석자들은 열심히 메모를 하는데 최 회장은 유인물을 접어서 부채질을 했다.

정치와 경제의 서열이 엄격했던 시절이라서 그날 당장 청와대로부터 손길승 당시 기획실장에게 주의하라는 전화가 걸려 왔다. 최 회장은 “부채질을 하는 것은 생리현상인데 유인물을 부채 대신 쓰면 불경죄에 걸리는가? 아니 메모할 건더기가 어디 있다고…”라고 일갈했다.(홍사중 저 ‘나는 한없이 살았다’ 중에서)

그는 인재 양성에서도 선진적이었다. 국내 최초의 기업연수원인 ‘SK아카데미’를 1975년에, 국내 최초의 해외유학 지원재단인 ‘한국고등교육재단’을 1974년에 설립했다.

나아가 1970년대에 이미 “기업이 커지고 사회가 복잡해지면 경영자의 개인적 자질만으로는 운영될 수 없다”며 과학적 경영시스템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현재 SK맨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SKMS’와 ‘수펙스’가 그 결과물이다.

그런 최 회장이 직물회사에서 석유화학 및 통신회사로 키워온 SK그룹은 최근 몇 년간 자랑보다는 불미스러운 일로 언론에 자주 올랐다.

SK글로벌의 분식회계와 부당내부거래 등으로 아들인 최태원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이 법의 처벌을 받았으며, 취약한 지배구조로 인해 해외 자본으로부터 경영권까지 위협받았다.

지난주 SK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SK㈜ 주주총회에서 최태원 회장은 압도적으로 재신임을 받았다. 하지만 고 최 회장은 아들이 경영권 방어에 성공했다고 마냥 기뻐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생전에 “기업은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며, 경영은 잘할 수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이 맞다”고 말한 그였다.

SK와 최태원 회장에게는 이번 주총이 새로운 도전의 시작이다.

SK는 더욱 투명하고 튼실한 경영으로 시장의 신뢰와 국민의 사랑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최 회장은 최고경영자로서 능력을 보여줘야 하는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

국민들 역시 한때의 허물로 기업을 통째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 누가 경영을 하든, 창업자의 자손이든 전문경영인이든, 기업은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야 할 사회적 자산이다.

작고한 기업인의 업적과 노력을 평가하는 데 인색할 필요도 없다. 미국인들이 존경하는 헨리 포드나 앤드루 카네기도 완전무결한 인물은 아니지 않은가.

신연수 경제부 차장 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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