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농대를 거쳐 미국 위스콘신대 화학과와 시카고대 대학원(경제학)을 나왔다는 경력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생전에 경제학자나 과학자들과 토론을 즐겼고 권위주의를 체질적으로 싫어했다.
잘 알려진 일화 한 토막.
1994년 청와대에서 ‘신경제 추진회의’가 열렸다. 대통령이 연설문을 읽을 때 다른 참석자들은 열심히 메모를 하는데 최 회장은 유인물을 접어서 부채질을 했다.
정치와 경제의 서열이 엄격했던 시절이라서 그날 당장 청와대로부터 손길승 당시 기획실장에게 주의하라는 전화가 걸려 왔다. 최 회장은 “부채질을 하는 것은 생리현상인데 유인물을 부채 대신 쓰면 불경죄에 걸리는가? 아니 메모할 건더기가 어디 있다고…”라고 일갈했다.(홍사중 저 ‘나는 한없이 살았다’ 중에서)
그는 인재 양성에서도 선진적이었다. 국내 최초의 기업연수원인 ‘SK아카데미’를 1975년에, 국내 최초의 해외유학 지원재단인 ‘한국고등교육재단’을 1974년에 설립했다.
나아가 1970년대에 이미 “기업이 커지고 사회가 복잡해지면 경영자의 개인적 자질만으로는 운영될 수 없다”며 과학적 경영시스템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현재 SK맨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SKMS’와 ‘수펙스’가 그 결과물이다.
그런 최 회장이 직물회사에서 석유화학 및 통신회사로 키워온 SK그룹은 최근 몇 년간 자랑보다는 불미스러운 일로 언론에 자주 올랐다.
SK글로벌의 분식회계와 부당내부거래 등으로 아들인 최태원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이 법의 처벌을 받았으며, 취약한 지배구조로 인해 해외 자본으로부터 경영권까지 위협받았다.
지난주 SK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SK㈜ 주주총회에서 최태원 회장은 압도적으로 재신임을 받았다. 하지만 고 최 회장은 아들이 경영권 방어에 성공했다고 마냥 기뻐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생전에 “기업은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며, 경영은 잘할 수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이 맞다”고 말한 그였다.
SK와 최태원 회장에게는 이번 주총이 새로운 도전의 시작이다.
SK는 더욱 투명하고 튼실한 경영으로 시장의 신뢰와 국민의 사랑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최 회장은 최고경영자로서 능력을 보여줘야 하는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
국민들 역시 한때의 허물로 기업을 통째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 누가 경영을 하든, 창업자의 자손이든 전문경영인이든, 기업은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야 할 사회적 자산이다.
작고한 기업인의 업적과 노력을 평가하는 데 인색할 필요도 없다. 미국인들이 존경하는 헨리 포드나 앤드루 카네기도 완전무결한 인물은 아니지 않은가.
신연수 경제부 차장 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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