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친지 지인들의 축하인사를 받고 얼마나 뿌듯했겠는가. 큼직한 책상을 앞에 두고 푹신한 의자에 앉으니 “직장인으로 성공했다”는 자부심이 생기지 않던가. 아침마다 비서가 끓여 오는 원두커피를 마시면 실무사원 시절의 모진 고생조차 아름다운 추억으로 바뀌리라. 이제 회사 골프 회원권으로 그동안 신세진 분들을 ‘운동 모임’에 초청할 수 있게 됐으니 눈앞에 파릇파릇한 골프장 잔디밭이 아른거리지 않으신지….
그러나 임원 자리가 좋은 것만은 아니다. 성과를 내지 못하면 쫓겨난다. 40대 나이에 임원을 반짝 지내고 물러나면 오랜 백수 생활이 기다릴지 모른다. 오너나 최고경영자(CEO)의 얼굴을 보는 기회가 잦아져 발탁 가능성도 있지만 호된 질책을 받을 위험도 높아진다. 동창회 친목회 등에서도 감투를 씌워 주며 회비를 몇 배 더 내라고 한다. 신분 상승 때문에 권한만큼 책임도 커지는 것이다.
▼전략적사고로 큰흐름봐야▼
임원으로 능력을 발휘하려면 먼저 전략적 사고(思考)를 가져야 한다. 이는 경영학 교과서에도 강조돼 있지만 성공한 CEO들이 털어놓는 체험담이기도 하다. 급변하는 경영환경에서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은 정답이 붙어 있지 않은 문제집을 푸는 것과 마찬가지다. 기존 공식으로는 풀리지 않는 고난도 문제들이 수두룩할 것이다.
해법 아이디어가 떠오르도록 하려면 유연한 두뇌를 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실무지식 이외에 국내외 정세, 경영경제 동향 등 거시적인 흐름을 알아야 한다. ‘잔머리’를 굴리지 말고 ‘큰 머리’를 써야 한다. 문학 철학 역사 음악 미술 등 인문학적 소양을 쌓으면 더욱 좋다.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대화를 나눈 사람들은 그의 풍부한 인문학 지식에 놀란다. 삼성전자가 소비자 기호에 맞는 신제품을 잇달아 개발한 데엔 윤 부회장의 그런 소양도 한몫을 했으리라.
임원은 리더십을 갖추어야 한다. 거창한 능력을 요구하는 듯한 ‘리더십’이란 단어 앞에 주눅 들지 않아도 된다. 칭기즈칸이나 알렉산더 같은 영웅만이 리더인 것은 아니다. 리더의 특성은 강한 체력, 용맹, 보스 기질 등이 아니라 ‘조직의 가치관에 맞는 자질’이라는 게 리더십 전문가들의 분석 결과다. 부하와 상사의 신뢰를 받는 사람이 진정한 리더인 셈이다.
한국경제가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하는 것은 임원들의 경쟁력이 약하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나와 눈길을 끈 바 있다. 베인앤드컴퍼니 이성용 대표는 ‘한국을 버려라’는 저서에서 한국의 많은 임원들은 경영자로 탈바꿈하지 못하고 여전히 관리자에 머물고 있다고 지적했다. 창의적인 일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임원들이 전략적 사고로 성장엔진을 가동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한국 기업의 상당수가 침체에 빠져 있다는 것. 이 대표는 “한국의 일부 임원은 입사 초기 1년간 배운 지식을 20년 되풀이했기에 업계의 큰 흐름을 너무나 모른다”고 꼬집었다.
각 대기업에서는 임원 역량을 키우기 위해 다양한 연수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다. 비용도 적잖이 들인다. 오너의 역할은 훌륭한 CEO를 고르는 것이고 CEO의 주요 임무는 임원들의 능력을 키우는 것 아닐까. 임원에게 ‘돌쇠형’ 충성만을 강요하면 그의 창의력은 쇠퇴한다. 그런 임원들이 대부분인 회사라면 앞날이 어둡다.
▼충성만 강요땐 마이너스▼
“자질이 우수한 직원을 떡잎 때부터 잘 키워 유능한 임원으로 키우는 조직에 밝은 미래가 있다”고 조직전문가 램 차란은 ‘리더십 파이프라인’이란 저서에서 강조한 바 있다.
신임 임원님들, 축하 화분의 향기에 마냥 취해 있을 때가 아님을 깨닫지 않으셨는지…. 열정, 지혜, 경험을 살려 멋진 경영자로 대성하시길….
고승철 편집국 부국장 che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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