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서하진이 2000년 발표한 단편소설 ‘모델하우스’의 한 구절이다. 소설 속 모델하우스는 주인공에게 행복한 삶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는 공간이자 남편의 불륜현장을 목격하게 하는 불행한 공간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모델하우스는 아파트 전시장이고, 주택 실내 꾸미기 학습터이고, 가족동반 놀이판이고, 첨단 가전 및 가구 경연장이다.》
○ 모델하우스는 진화한다
국내에 모델하우스가 첫선을 보인 것은 1971년. 서울 여의도 시범아파트가 분양되면서다. 하지만 당시 모델하우스는 요즘과 크게 달랐다. 단지 현황판과 모형도만 전시됐다.
198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아파트 인기가 본격적으로 높아지자 모델하우스가 달라졌다. 실제 집 내부와 동일하게 꾸며진 공간이 만들어졌고, 인테리어 장식도 시작됐다.
경기 성남시 분당 등 5개 신도시를 포함해 주택 200만 가구 건설로 주택시장이 안정을 찾은 1990년대 중반 이후 건설회사들은 모델하우스에서 손님을 끌어들이기 위한 각종 행사를 벌이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아파트는 단순한 전시장에서 가족 단위 놀이터로 바뀐다.
그리고 1990년 말 아파트 분양가가 자율화되고 아파트 고급화 경쟁이 본격화면서 모델하우스도 급격한 변화를 겪는다. 이때부터 첨단 전자제품과 고급 가구업체들이 신상품을 선보이는 경연장이 됐다. 최근 들어서는 인터넷을 활용한 사이버 모델하우스가 늘어나고 있다. 정보기술(IT) 발달에다 정부가 인터넷 청약 활성화 방침을 밝히고 있어 이 같은 추세는 더욱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상설 모델하우스를 세우고 바자나 벼룩시장을 열고, 불우이웃 돕기 행사를 주관하며 지역 커뮤니티의 활동 공간으로 활용되는 사례도 많아지고 있다.
머잖은 미래에는 모델하우스가 없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GS건설 인테리어팀 민미홍 과장은 “주택을 다 지은 뒤 분양하는 ‘후분양제’가 정착되면 수요자는 모델하우스 대신 완공된 아파트에 만들어진 샘플하우스를 구경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모델하우스의 경제학
모델하우스의 생명은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년 남짓이다. 모델하우스를 짓는 데 필요한 땅은 대략 500∼600평 정도. 주차공간까지 더하면 1000평 정도는 확보해야 한다.
건설비용은 평당 평균 200만∼300만 원으로 추산된다. 여기에는 가구나 인테리어 비용이 포함됐다. 최근 모델하우스가 고급화되면서 건설비용은 늘어나는 추세다. 일부 고급 주상복합아파트 모델하우스는 건설비용만 100억 원대를 넘는 것으로 알려질 정도다.
모델하우스 하나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인력은 수십 명. 시공과 관리를 맡는 건설사 직원과 분양대행사 직원, 도우미, 전화상담원, 주부 모니터요원까지 다양하다. 이들이 모델하우스에서 일하며 받아가는 수입은 고수익에 속한다. 분양 대행사 ‘미르이앤씨’ 이신철 부장은 “모델하우스의 꽃으로 불리는 도우미의 요즘 하루 일당이 10만∼15만 원”이라고 귀띔했다.
○ 모델하우스의 속살보기
서하진의 소설처럼 모델하우스는 화려한 성채다. 수많은 백열등 아래 첨단 유행을 달리는 마감재와 가구로 치장해 보는 이를 설레게 한다. 방문객을 유혹하기 위한 건설업체들의 노력이다. 하지만 화려함 뒤에 숨겨진 진면목을 봐야 한다.
우선 눈길을 끄는 가구와 가전제품, 마감재는 대부분 분양가에 포함돼 있지 않다. 실제 입주할 아파트와 다를 수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돈을 내고 설치해야 하는 선택 품목인지, 분양가에 포함돼 설치되는 것인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모델하우스는 최대한 넓어보이도록 연출한다. 베란다를 확장하고 바닥재를 거실과 통일해서 거실을 실제보다 넓게 보이도록 하고, 조명을 최대한 밝게 하고 천장을 실제보다 높이기도 한다. 또 길이를 줄인 침대를 사용하고 거실에 자리해야 할 소파를 베란다에 내놓기도 한다. 따라서 실제 길이를 알려면 줄자를 이용하거나 발걸음으로 재봐야 한다.
모델하우스를 꽉 메운 인파를 믿고 인기 아파트로 착각해서도 안 된다. 사은품이나 안내 책자를 한 군데에서만 나눠주고 1층 홀을 작게 만들어 항상 실내가 붐비도록 연출한다. 경품 추첨 등 각종 이벤트 때문에 방문한 사람도 많다.
대림산업 마케팅팀 김준성 차장은 “모델하우스 단지모형도에는 학교, 공원, 각종 생활편의 시설이 항상 단지 근처에 있는 것으로 소개된다”며 실제로 그런지 현장을 방문해 확인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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