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의 경남 거제시 옥포조선소가 작년 한 해 구내식당용으로 거제지역에서 사들인 음식 재료 명세서 가운데 일부다.
지난해 국가 경제가 극심한 불황을 겪었지만 거제 주민들은 불황을 몰랐다. 지역의 주력 산업인 조선산업의 경기가 워낙 좋았기 때문이다. 삼성중공업 조선소 현장 규모는 대우조선과 비슷하다.
이 두 회사가 거제시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80%다. 기업이 살면 지역경제가 살고 주민들의 생활도 풍성해진다.
통계청에 따르면 울산의 2003년 1인당 지역총생산(GRDP)은 3252만 원.
전국 16개 광역시·도 가운데 단연 1위다.
이를 최근 환율(1달러=1008.6원)로 계산하면 3만2240달러다. 울산은 이미 ‘1인당 소득 3만 달러 시대’에 진입했다.》
▽기업이 발전하면 지역사회도 발전=허허벌판이던 포항에 포항제철이 들어선 것은 1968년. 당시 포항 인구는 7만 명이었으나, 지금은 그 7배가 넘는 51만 명의 중견도시로 성장했다. 지금은 포스코로 이름을 바꾼 세계적 우량기업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포스코의 포항 현장 임직원은 약 9300명. 이들이 지난해 급여, 체력단련비, 격려금 등으로 받은 금액은 총 5961억 원이다. 포항지역 36개 협력업체에 지급된 작업비도 지난해 5576억 원이었다. 한 해 1조 원 이상이 포항과 인근 지역의 식당 목욕탕 이발소 술집에 뿌려지고 은행에도 가서 지역 경제를 떠받치고 있다.
울산시는 ‘현대시’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로 옛 현대그룹 계열사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다.
2003년 기준으로 현대자동차의 울산공장 직원은 2만7000명, 현대중공업은 2만6400명으로 두 회사 직원만 5만 명을 훌쩍 넘는다. 협력회사 직원과 가족들을 합치면 울산 주민(약 105만 명)의 3, 4명 가운데 1명은 현대와 관련이 있는 셈이다. 이 가운데 현대차 울산공장은 단일 공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로 꼽힌다. 울산공장에서 발생하는 매출만 약 20조 원. 직원들에게 지급되는 급여는 연 1조1000억 원이다. 현대차 파업이 장기화될 때면 울산 지역경제 전체가 휘청거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울산상공회의소 김영주 전무는 “옛 현대그룹 계열사들은 자금 여력이 있는 기업들이어서 문화나 환경 분야에 대한 투자도 많았다”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도 기업 유치에 적극적=정부가 추진하는 기업도시를 유치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들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제대로 된 기업이 들어서면 지역의 고용창출은 물론 전후방 경제효과까지 누려 지역경제 전체가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지자체 단체장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도시가 일본 도요타 시(8800만 평)의 약 20분의 1 크기인 500만 평 규모로 개발된다고 가정할 때 29만 명 정도의 고용창출 효과가 발생한다는 게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추산이다.
거제시청 관계자는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이 지역 살림살이에 끼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시장이 이 회사의 움직임에 관심이 많다”면서 “ ‘조선산업지원계’ 라는 부서를 실제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의 사례=기업이 지역발전에 기여하는 기업도시로는 일본 아이치(愛知) 현의 도요타(豊田) 시를 꼽을 수 있다.
1938년 도요타자동차 공장이 들어서면서 행정명칭부터 고로모(擧母) 시에서 회사이름인 도요타로 바뀌었다.
2001년 현재 도요타 시의 인구는 약 35만 명. 도요타 시에 있는 크고 작은 공장은 모두 1300개 정도다. 이 가운데 도요타자동차 관련 공장은 416개로 전체의 31%다.
자동차관련 공장에서 일하는 종업원은 7만3000명. 도요타 시 전체 공장 종업원 8만7000명의 80%가 넘는다. 도요타자동차는 본사공장 등 7개의 공장에서 약 1만8800명이 일하고 있다.
매출액 기준으로 보면 도요타자동차의 비중이 더욱 실감난다. 도요타자동차와 관련된 자동차업종 공장의 출하액은 8조5000억 엔으로 전체 제조업 출하액의 95%를 차지한다.
도요타자동차는 고급 브랜드 ‘렉서스’를 앞세워 전 세계 고급차 시장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초우량기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에는 순익만 100조 원을 넘었다.
이는 이 회사가 도요타 시에 내는 세금도 그만큼 많다는 의미. 도요타 시의 재정자립도는 매년 전국 667개 시 가운데 최상위이고 2003년에는 전국 1위를 차지했다.
김광현 기자 kk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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