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 잇단 한국때리기 왜?…‘5%룰’ 원색비난

  • 입력 2005년 4월 4일 18시 41분


정부가 국내 금융기관을 지배하는 외국 자본의 투명성을 높이는 제도를 도입하려 하자 영국 경제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가 연일 한국 정부를 맹비난하고 있다.

FT의 공격은 △은행의 외국인 이사 수 제한 △경영 참여 목적으로 지분 5% 이상을 보유하면 신고하도록 한 ‘5%룰’에 집중돼 있다.

지난달 31일 5%룰에 대해 ‘정신분열증적(schizophrenic)’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던 이 신문은 3일자에서는 “유럽연합(EU)이 은행의 외국인 이사 수를 제한하려는 한국의 은행법 개정안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두 제도 모두 미국 영국 등에서는 이미 시행 중인 데도 FT가 이를 문제 삼는 데 대해 정부는 다른 의도가 있다고 보고 있다.

▽엉뚱한 ‘은행 이사 수 제한’ 비판=FT는 3일 “외국인 이사 수 규제를 담고 있는 한국의 은행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WTO 규정 위반”이라면서 “EU의 제소 움직임은 (한국의) 반(反)외국인 정서가 외국인을 타깃으로 한 불공정한 정책 변동을 부추기고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면서 나온 것”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전후 맥락을 살펴보면 FT의 주장에는 무리가 있다.

한국에서 은행의 이사 수 제한이 논의되기 시작한 건 지난해 11월부터. 윤증현(尹增鉉) 금융감독위원장이 FT와의 인터뷰에서 “국내 은행의 외국인 이사 수가 이사회의 과반수가 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 말했다.

외국인 소유 은행들이 가계 대출에만 치중해 금융회사 본연의 기능과 안정성이 훼손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단 WTO와의 금융 관련 양허안에 이사 수 제한 관련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으므로 법제화보다는 관행으로 정착시킨다는 방침이었다.

이런 문제 의식은 정치권에서도 느껴 현재 의원입법 형태로 국회에 은행법 개정안이 상정돼 있다. 하지만 통과되기 어렵다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FT는 은행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기정사실화했는가 하면 이를 관행으로 정착시키려는 데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법적 요건이 없는데도 금감위가 제일은행을 인수한 영국 스탠다드차타드은행(SCB)에 새 이사진의 절반을 한국인으로 하도록 요구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국도 금융감독청(FSA)의 지도를 통해 외국 금융회사에 대해 3명 이상의 이사진을 구성하고 이 가운데 1명 이상은 내국인으로 선임하도록 하고 있다.

미국은 더욱 엄격해 은행의 이사는 선임 1년 전부터 은행 소재지에서 100마일 이내에 살아야 한다는 거주지 제한 규정까지 두고 있다.

▽‘5%룰’ 원색적 비난=FT는 지난달 31일 한국 정부가 최근 개정한 5%룰을 “경제 민족주의이며 가혹한 제도”라고 힐난했다.

5%룰은 ‘단순 투자’라며 국내 기업에 투자한 뒤 사실상 ‘경영 참여’를 노리는 외국 자본의 불공정성을 없애려는 제도. 5% 이상 지분을 보유하면 보유 목적을 금융감독 당국에 신고하도록 했다.

실제로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2일까지 5%룰에 따라 새로 보고하도록 한 결과 그동안 ‘단순 투자’라고 주장했던 소버린자산운용, 헤르메스펜숀즈매니지먼트 등 외국계 펀드들이 보유 목적을 ‘경영 참여’로 바꿨다.

미국과 일본도 이를 채택하고 있어 영국은 ‘3%룰’로 한국보다 엄격하다. 더구나 한국의 제도는 다른 나라보다 훨씬 관대해 가혹하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한양대 이상빈(李商彬·경영학) 교수는 “미국은 보고 이후 최장 20일간 의결권 행사를 금지하지만 한국은 5일에 불과하다”며 “자금 조성 내용도 미국은 향후 사용 예정 자금까지 신고해야 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오히려 한국의 제도는 허위 보고에 대한 뚜렷한 처벌 조항이 없어 제도의 취지를 살리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실제로 외국계 펀드들은 자금 조성 내용을 대부분 ‘자기 자금’이라고 간단히 기재하고 명확한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

▽숨겨진 의도 있나=대부분의 선진국이 채택하고 있는 제도에 대한 FT의 ‘한국 때리기’는 무엇 때문일까.

금감위 관계자는 “SCB와 헤르메스 등 한국에 투자한 영국계 은행과 펀드의 이해를 대변하기 위해 한국 금융감독 당국을 압박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그동안 한국을 ‘한수 아래’의 국가로 여기다 관련 규제가 강화될 움직임을 보이자 유럽의 이해 당사자들이 FT를 통해 이를 저지하려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금감위는 FT를 비롯한 유럽 언론들에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지난달 31일자 기사에 대한 반론보도문 게재를 이번 주 중 FT에 요구할 계획이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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