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전망대]이강운/유통시장의 韓流

  • 입력 2005년 4월 18일 17시 26분


코멘트
“삼성테스코가 건장한 어른이라면, 우리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어린이입니다. 삼성테스코의 유통 현장을 견학한 것은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중국 대형할인점 하이몰의 웨이잉자오(魏應交) 사장이 11일 삼성테스코 이승한 사장에게 감사 편지를 보냈다. 얼마 전 13명의 임원을 이끌고 삼성테스코 홈플러스 매장과 물류센터를 견학하고 돌아간 뒤였다.

웨이 사장은 “선진국까지 갈 필요가 없다. 둘러보니 한국이 유통 선진국이었다”고 격찬했다.

중국의 유통 관계자만 한국을 찾은 게 아니다. 몇 년 전부터 유통 선진국이라는 일본에서도 한국의 할인점을 주목하고 있다.

일본의 유통그룹 ‘이온’은 작년에만 세 차례 신세계 이마트 매장을 둘러봤다. 이온은 3월 매출 부진에 시달려 온 일본 까르푸 점포 8곳을 인수했다. 650개 슈퍼마켓과 460개 대형 할인매장을 보유해 ‘일본판 월마트’로 불리는 회사다.

자스코(편의점 체인), 톱스(슈퍼마켓), 이토요카도(대형할인점), 세이유백화점 등도 홈플러스의 매장시설과 고객 서비스 등을 꼼꼼히 살피고 돌아갔다.

중국의 한국 유통 견학은 이해가 가지만 유통분야에서 10년 정도 앞서 있다는 일본이 한국 할인점을 찾은 이유가 궁금해진다.

일본 유통시장은 2000년부터 시작된 다국적 거대 유통기업들의 공세로 소매업의 중심인 대중양판점(GMS)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GMS는 상품 구성이 백화점과 슈퍼마켓의 중간, 가격은 백화점과 할인점의 중간으로 중산층이 주요 고객이다.

외국계의 공세가 시작되면서 일본 소비자들의 구매 행태에 미묘한 변화가 나타나는 점도 시장 재편의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일본 중산층들은 전통적으로 중간가격 시장에 머물러 있었으나 ‘10년 불황’의 그늘에서 벗어나면서부터 고가(高價)와 저가(低價) 상품 구매를 늘리고 있다. 고가의 명품이나, 싸고 실속 있는 저가 상품이 팔리는 반면 어중간한 가격대는 고전이 예상된다는 것.

사실 이런 구매 행태는 한국과 선진국에서 새로운 소비코드로 정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한국의 할인점들은 ‘저가시장’에서 다국적 유통업체를 크게 앞섰다. ‘저가’이면서도 백화점급의 쾌적한 쇼핑 분위기와 편의시설을 융합한 결과다.

다국적 업체의 공격에 직면한 일본은 저가시장에서의 생존 해법을 한국형 할인점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국내 할인점의 효시 이마트는 미국의 창고형 할인점과 일본의 GMS를 벤치마킹해 1993년 11월 ‘1호점’을 냈다. 그로부터 불과 10여 년. 한국의 할인점들은 주요 국가들의 벤치마킹 대상으로 급부상했다. ‘유통도 한류(韓流)’라는 말이 실감난다.

이강운 경제부 차장 kwoon90@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