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출가스 인증서를 받지 못해 기아자동차가 ‘프라이드’ 디젤 모델을 출고하지 못하고 있는 사태는 환경단체들의 반발을 의식한 환경부의 ‘면피주의’ 때문이라는 게 자동차 업체들의 비판이다.
게다가 산하단체를 통해 수입 디젤승용차에 대해서는 인증을 내줬다는 점에서 국내 자동차 업체만 차별한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게 됐다.
내수침체가 장기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올해 ‘대표적 히트상품’으로 점쳐졌던 디젤승용차의 생산과 판매가 차질을 빚으면서 경기회복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환경기준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프라이드 디젤모델은 디젤승용차 국내 판매가 올해부터 허용되면서 나온 첫 번째 국산 디젤승용차. 이에 앞서 지난달 28일 한불모터스가 수입차인 ‘푸조 407HDi’를 한국시장에서 첫 디젤승용차로 선보였다.
프라이드는 올해 한국시장에서 판매가 허용되는 ‘유로3’ 기준보다 훨씬 엄격한 최신 환경기준 ‘유로4’를 충족시킨 차량이다.
환경부 산하단체인 국립환경연구소도 프라이드의 환경기준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국립환경연구소 관계자는 “국산 디젤승용차는 핵심 부품을 외국에서 전량 수입해 외국산 디젤승용차와 큰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같은 환경기준에 맞춘 수입차인 푸조는 인증서를 받았지만 프라이드는 인증서를 받지 못하는 이상한 상황이 생긴 것이다. 국산 승용차에 대한 배출가스 인증서는 환경부가, 수입차에 대한 인증서는 국립환경연구원이 각각 발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기아차의 프라이드 디젤모델 생산라인은 가동조차 못하고 있으며 언제 차를 팔 수 있을지 기약이 없는 상황이다. 반면 푸조407HDi 수동모델은 이미 인증서를 받았고 자동모델은 곧 인증서가 발급돼 인천항에 도착한 차들이 며칠 내에 90여 명의 계약자들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환경단체 눈치 보는 환경부=디젤승용차 판매 시기와 환경기준은 2003년 2월 정부, 학계, 환경단체로 구성된 ‘경유차 환경위원회’가 결정했다. 당시 위원회는 2005년 한 해 동안 유로3와 유로4를 충족하는 디젤승용차 판매를 허용하고 2006년부터는 유로4 기준 차량만 판매할 수 있도록 했다.
위원회는 동시에 디젤승용차 판매로 대기오염이 심화된다는 환경단체의 지적도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재정경제부는 에너지 관련 세법을 고쳐 경유 값을 올해 7월 1일 75%로, 2007년 7월 1일까지 85%로 올려 디젤차의 과도한 판매 증가를 막기로 했다.
그러나 이런 내용을 담아 지난해 12월 확정된 세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되지 않자 환경단체들은 최근 디젤승용차 판매시기를 늦춰야 한다고 환경부에 요구했다.
재경부 이종규(李鍾奎) 세제실장은 “다음 달에 국회에 개정안을 제출하고 예정대로 올해 7월 1일부터 시행하기로 환경부와 협의를 마쳤다”면서 “환경부가 인증서 발급을 미루는 이유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환경부가 책임을 재경부로 떠넘기면서 환경단체들의 반발을 우려해 인증서 발급을 미루는 것 같다”면서 “판매 차질과 개발비, 설비투자 등 기아차의 피해뿐 아니라 부품업체들도 자금난을 겪고 있어 시간이 갈수록 피해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태로 5월 이후 판매가 예정돼 있던 ‘유로3’ 기준의 현대차 뉴아반떼XD와 기아차 쎄라토 등의 판매시기도 불확실해져 업계 전체의 피해는 더 커질 전망이다.
▼유럽선 10대중 4대가 경유 승용차▼
한국에서는 판매가 불투명해진 상황이지만 최근 고(高)유가로 세계시장에서 디젤차의 비중은 커지고 있다.
디젤승용차가 가장 잘 팔리는 곳은 유럽. 서유럽 승용차 시장에서 디젤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44%까지 올라갔으며 2006년에는 50%에 이를 전망이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전체 판매 승용차의 80%, 프랑스에서는 70%, 독일과 벨기에는 68%, 스페인은 65%가 디젤차다.
이에 따라 메르세데스벤츠, BMW, 푸조 등 유럽 자동차업체들은 디젤승용차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현대차가 2001년 8월 라비타(현지명 매트릭스)에 디젤 엔진을 얹어 유럽에 수출한 이후 쏘나타 클릭(겟츠) 아반떼(엘란트라) 등으로 수출용 디젤승용차를 만들었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신치영 기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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