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태홍]가사노동도 사회적 대우 받아야

  • 입력 2005년 5월 10일 19시 50분


많은 사람이 가정을 재화나 용역을 소비만 하는 공간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가정은 소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도 한다. 이러한 생산은 대부분이 주부를 통해서 이뤄진다. 주부들이 가정에서 음식물을 만들거나 옷을 세탁하고 수선하며 육아와 자녀교육을 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이러한 재화나 용역을 구입할 수밖에 없게 된다.

우리가 가정에서 이러한 생산활동이 이뤄지는 것을 잘 알면서도 주부는 곧 소비주체, 가정은 곧 ‘소비의 장(場)’으로만 인식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한 국가의 생산과 소비활동을 기록하는 ‘국민소득계정’에 가계부문은 소비활동만 기록하기 때문이다. 즉, 대부분의 국가에서 주부의 생산활동은 경제적 수치로 산정되지도 않고, 통계적으로 파악조차 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1900년대부터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주부의 생산활동이 국민소득계정에 산정되지 않음에 따라 나타나는 두 가지 문제점을 인식했다.

▼전업주부 생산활동 과소평가▼

그 첫째는 가계부문 생산활동이 누락된 국민소득계정과 이를 토대로 작성한 국내총생산(GDP)이 한 국가의 복지 정도를 정확하게 나타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가사노동을 주로 수행하는 주부의 생산활동이 전혀 평가되지 않거나 과소평가됨으로써 국가 및 가정경제에 대한 주부의 공헌이 무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직장과 가정에서 일하는 전체 노동시간을 성별로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성은 전 생애에 걸쳐 남성보다 많은 일을 하고 있었다. 그 대부분이 가사노동인데,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는 2004년 기준으로 여성근로자의 월평균임금수준인 157만 원과 비슷한 월 150만 원으로 여성개발원은 산출했다. 또한 우리나라 주부들이 생산한 재화와 용역의 가치는 1999년 기준으로 연간 60조∼70조 원이었다. 이와 같은 금액은 우리나라 GDP의 약 15%에 이르고, 남녀근로자들이 생산하는 연간 총재화 및 서비스의 31%에 해당한다.

주부 가사노동이 국가 및 가정경제에서 차지하는 이러한 중요성 때문에 주요 선진국은 가사노동의 가치를 정당하게 평가하고 주부들이 그들의 기여도에 걸맞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최근 미국의 한 인터넷 회사가 주부 540만 명을 표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주당 100시간 일하고 두 자녀를 키우는 주부의 경우 연봉이 약 1억3000만 원에 이르렀다고 한다. 물론 이 통계에 과장이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한국의 경우 전업주부들의 사회적 평가가 심히 절하돼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주부의 생산활동을 정당하게 평가해야 할 시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사회적 합의에 의해서 전업주부의 가사노동가치를 정당하게 평가하는 방식을 결정하고, 이 방식에 따라 가사노동을 경제적으로 평가해 고시할 필요가 있다.

고시된 가사노동의 가격은 전업주부가 교통사고 등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받을 때나 부부간 재산분할을 할 때, 그리고 국민연금 등의 산정 등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현재 전업주부 상해보상의 경우 가사노동의 가치를 무시하고 일률적으로 도시 일용노임단가(115만 원)를 적용하고 있으나 최소한 고시된 가사노동가치(150만 원)라도 적용해야 할 것이다.

▼국민연금 등 불이익 없도록▼

이와 함께 가계부문의 생산 및 소비활동을 기록하는 국민소득계정의 ‘무급노동 위성계정(satellite account)’을 만들어야 한다. 위성계정을 작성하게 되면 ‘주부가 국민경제에 어느 정도 공헌하는지’, ‘주부의 가사노동가치가 어느 정도인지’가 통계적으로 파악되므로 주부의 가사노동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제도적, 의식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김태홍 한국여성개발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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