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수 지지부진…사모투자펀드에 옐로카드

  • 입력 2005년 5월 13일 03시 33분


‘토종 자본’ 육성이라는 취지로 지난해 말 도입된 사모투자펀드(PEF) 제도가 곳곳에서 삐걱거리고 있다.

일부 펀드는 벌써 청산 가능성이 거론되는가 하면 편법투자 논란에 휩싸인 펀드도 있다.

금융권에서는 지나친 규제가 문제라며 제도 개선을 요구한다. 하지만 시장 여건이 성숙하지 못한데다 PEF 운영자들의 과욕과 미숙함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현재 금융감독 당국에 등록된 PEF는 6개다.

○ 금감원, “등록 취소하겠다”

금융감독원은 데본셔코리아에 이달 말까지 투자자를 확보하지 못하면 PEF 등록을 취소하겠다고 통보한 것으로 12일 확인됐다.

금감원 관계자는 “데본셔코리아가 SK네트워크의 자회사인 에스지위카스(옛 세계물산) 인수에 실패한 뒤 사실상 존립이 어려워져 이달 말까지 정상화되지 않으면 자진 등록취소를 유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데본셔코리아는 영국계 투자펀드인 데본셔캐피탈의 한국법인. 올해 2월 에스지위카스를 매입하려 했지만 자금 모집이 안 돼 실패했다. 하지만 투자자를 새로 모집해 에스지위카스 인수 작업을 다시 추진할 계획이다.

데본셔코리아 한주형 사장은 “금감원의 방침을 이해한다”면서도 “인수 대상 기업이 있는 만큼 이달 안에 정상화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SK네트워크 측이 데본셔코리아와 매각 협상을 재개할 의사가 없다고 단언하고 있어 정상화 여부는 미지수다.

금감원은 데본셔코리아를 방치하면 PEF 전체의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한편 우리은행 PEF는 우방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투자가 아닌 사실상 대출을 했다는 혐의로 금감원의 조치를 기다리고 있다.

○ 제도 개선이 ‘만병통치약’?

금융권은 PEF가 활성화되지 않는 이유로 각종 규제를 꼽고 있다. 투자자 모집과 운용, 등록 규정이 지나치게 까다롭다는 것.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미국에는 PEF와 관련된 법 자체가 없다”며 “투자자 수나 최소 출자금 규제, 지분 보유 규정 등을 풀어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감원도 이를 반영해 최소 출자액(개인 20억 원, 법인 50억 원)을 낮추고 펀드 운용의 자율성을 높여 줄 방침이다. 현재 15% 미만으로 묶여 있는 보험사의 PEF 출자한도를 상향 조정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PEF의 문제가 시장 자체의 한계 때문인데도 정부에 제도 개선만 요구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 구조조정이 일단락되면서 쓸 만한 매물이 드문 데다 그나마 값이 비싸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는 것.

산업은행 양문석 PEF팀장은 “매물만 많으면 현재 제도로도 PEF가 활성화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며 “지금 상황에서는 규제가 풀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증권사 관계자는 “PEF가 기업 인수 등의 실적을 쌓지 못한 만큼 이들에게 돈을 맡길 투자자가 많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며 “장기적으로 전문성을 키우고 투자자들의 신뢰를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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